한반도에 일본군 시설이 매우 많이 남아 있다. 2017년 미군의 이전이 완료되는 용산기지에는 132동의 건물이 남아 있고, 제주도에는 집단적으로 남아 있는 진지만 104곳이다. 충북 영동군에서 확인된 동굴만 89개이고, 굴 파기에 동원된 사람들은 동굴이 200여개 된다고 증언한다. 일본군이 한국의 ‘마쓰시로 대본영’을 영동에 만들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많은 시설이 울산에서 남해안을 따라 목포 일대까지 곳곳에 남아 있다. 광주, 대전, 대구 시내에도 수많은 동굴이 방치된 채 남아 있다.
이렇게 남아 있는 군사유적은 거의 대부분 1945년 미군이 한반도에 상륙할 것에 대비하여 건설된 시설들이다. 당연히 주변 지역에 사는 조선인이 대규모로 동원되었다. 동원된 사람들은 제대로 밥을 먹지도 못했고 매를 맞아가며 일해야 했다. 아버지 대신에 10대 초반의 소년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용산기지와 제주도에 있는 시설을 제외하면 남아 있는 것이 몇 개이고, 어떤 용도인지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 방치되어 있거나 개발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미군과 한국군이 관할하고 있어 보존 상태가 좋은 시설이 약간 있으며, 영동군에서 와인 저장고로 활용하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뿐이다.
최근 이들 시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작년 9월 일본 정부가 규슈와 야마구치현의 28개 산업유적군을 메이지 시기 산업혁명과 관련된 유적이라며 유네스코에 등재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아시아태평양전쟁 때 군수시설이나 산업시설로 이용되었다. 심지어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목숨을 잃은 탄광섬 하시마(일명 군함섬)처럼 강제동원과 관련된 곳도 있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 시기로 한정함으로써 이들 시설에서 침략과 동원의 역사를 빼버렸다.
문화재청은 여기에 대응하는 준비대책의 하나로 전국에 남아 있는 일본군 시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언감생심이었을 대책이 나온 것이다. 조선총독부 청사를 부숴버리고 경성부 청사를 망가뜨린 경우처럼, 그동안의 정책은 부정적인 역사의 현장을 훼손하고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 않았다면 2003년부터 추진된 용산기지 이전에 따른 공원화 계획에서 기지의 역사성이 적극 고려되었을 것이다. 조경과 토목이 주도하는 공원화 사업에 대응하여 용산공원을 어떤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어 미래가치를 제시할 것인가를 선제적으로 고민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인류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대상이 아닌데도 부정적 유산 가운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처음 등재되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네거티브적인 문화재도 인류에 반성적 교훈을 줄 수 있으면 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다는 새로운 발상이 뿌리내린 것이다.
일본의 움직임을 비판하며 개선하는 방향에서 등재 문제를 처리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만이 능사는 아닌 것이다. 동시에 우리도 전국에 산재해 있는 일본군 시설을 세계문화유산 선정의 기본 잣대인 ‘특별한 보편적 가치’에 맞게 보존하고 가꾸어 등재해야 한다.
서울시가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자연공간’으로 용산공원을 가꾸면서 일본군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겠다고 밝힌 점은 매우 온당한 조치이지만, 용산기지의 등재만으로는 부족하다. 남아 있는 일본군 시설의 대부분이 ‘본토결전’의 일환인 ‘결7호작전’을 위해 건설된 것이고, 오늘날 용산기지는 한반도의 분단과 동아시아의 분단을 상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용산공원은 분단 극복과 지역의 미래를 말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것은 지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문화재청이 준비하여 나서야 한다.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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