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논설위원
두 달 뒤면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의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물가가 불안하다. 며칠 전 브라질 중앙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6.51%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장률은 2%에 머물 전망인데, 물가는 지난 3년간에도 5.84~6.50% 올랐다. 브릭스(BRICS)의 하나로 한때 잘나가던 브라질 경제가 높은 물가 파고에 휩싸인 것이다. 반면, 유럽은 물가상승률이 낮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달 오름폭이 0.6%에 그쳤다. 그리스 등은 이미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에 빠졌다.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에 견줘 형편이 낫다. 3월 물가상승률이 1.3%였고, 1월과 2월에는 1.1%, 1.0%를 나타냈다. 올해 성장률은 4%로 높아질 것이라는 게 한국은행 전망이다.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으니 소비자들로서는 일단 좋을 법하다. 실제로 ‘물가 안정’이 이뤄졌다며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런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칫 정책 대응을 그르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물가 안정’ 상태가 아닌 것은, 한은 쪽에 물어보면 된다. 한은은 주된 임무가 ‘물가 안정’이고, 이를 위해 중기 물가안정 목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구체적 목표치는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정한다. 2013~15년의 경우 상승률을 2.5~3.5%(한해 상승률)로 관리하게 돼 있다. 우리 경제 여건에서 상승률이 이 범위에 들면 물가가 안정된 것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과 거리가 멀다. 올 들어 상승률은 1.1%이고, 올 한해 전망치(한은)는 2.1%이다. 지난해 상승률도 1.3%로 목표치를 크게 밑돌았다. 결코 ‘물가 안정’ 상태라고 할 수 없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인사청문회 등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한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국민과의 약속인 적절한 물가안정 목표를 지키지 못했으니 말이다. 걱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낮은 물가상승률(저물가)이 실질 기준의 빚 부담을 늘림으로써, 현안인 가계부채 해결에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00조원에 이른 가계부채를 생각할 때 그냥 넘길 대목이 아니다. 이는 소비와 투자 등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이 저물가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경을 쓰는 것은 이런 이유가 있다.
그런데 기재부는 물가가 안정된 상태라고 보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기재부는 얼마 전 내놓은 4월치 ‘최근 경제동향’에서 “3월 중 소비자물가는 1% 내외의 안정세를 유지(전년 동월 비 1.0→1.3%)”라고 했고, 2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올해 업무보고 자료에서는 “지난해 대내외적으로 중첩된 어려움 속에서도 물가가 안정되고… 금년도 우리 경제는 고용이 확대되고 물가가 안정을 지속하는…”이라고 했다.
2011년 8월 물가관계장관회의 당시에는 ‘일본의 물가안정 요인 및 시사점’이란 별도 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물가가 왜 낮은지 실태조사 등을 통해 원인을 분석하고 관습과 제도 개선 등 시사점을 도출할 것”이란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2001~10년 연평균 -0.3%였고, 2011년에도 7월까지 감소세였다(한해 전체로는 -0.2%). 일본이 10여년째 디플레이션으로 씨름하고 있는데도 기재부는 “물가안정 기조가 정착된” 것으로 보았다. 물가에 대한 인식이 크게 잘못돼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기재부가 어떻게 한은과 2.5~3.5%라는 중기 물가안정 목표를 정했는지 궁금하다. 자신들이 맡은 수급조절 위주의 물가관리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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