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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세월호와 FTA 안전 불감증 / 최원목

등록 2014-05-07 19:11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전반적으로 반성하게 해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 각자가 종사하는 전문 분야에서 대형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 점검과 제도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적극적 대외 개방론 입장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경제효율성 제고를 추구하는 글을 많이 올린 사람으로서, 우리 에프티에이 정책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에 대해서도 지적하고자 한다.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에프티에이 투자 부문에서 발생한다. 높은 수준의 투자자유화를 추구하고, 효과적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 ISD 제도(투자자가 직접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소송 제기)를 도입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명보호, 안전과 같은 필수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유사시 포괄적 규제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일반적 예외조항)은 확보돼야 마땅하다. 한-미 에프티에이 투자규정은 일반적 예외조항을 투자부문에 적용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 미국 투자자한테 영향을 미치는 생명이나 안전보호 정책을 취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다. 그동안 수많은 에프티에이가 체결되었는데, 일반적 예외조항이 특정 부문에 적용배제 되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정부는 한-미 에프티에이 투자부문 부속서에 유보조항이 있어, 필수 공공정책을 취할 수 있는 여지는 확보되어 있다는 입장이다. 이는 안전 불감증에서 오는 단견이다. 부속서에 유보되어 있는 정부의 규제는 사회보장서비스,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 등 몇몇에 한정되고, 그것도 공공질서 유지를 위한 규제는 심각한 위협, 비자의적 방식, 비례성 등의 까다로운 요건과 일정한 절차를 밟아야만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천재지변, 전시·사변, 국제수지 및 국제금융상 심각한 위기가 닥쳤을 때 외환거래 정지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 조항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필수적 장치다. 그럼에도 한-미 에프티에이는 이러한 세이프가드의 발동기간을 원칙적으로 1년으로 제한하고, 투자자산을 몰수하지 못하며, 경상거래 및 외국인 직접투자에는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10개가 넘는 조건을 충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너무 엄격한 요건으로 세이프가드 제도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게 된다.

에프티에이는 적극적 개방정책을 통해 교역이익을 최대화하는 메커니즘이다. 그렇다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의 절대주권과 관련한 규제 권한까지 개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위기시 사용할 수 있는 생명보호 권리와 세이프가드 권한을 잘 확보해놓아야, 평상시 마음 놓고 교역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교역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 및 안전보호 가치를 양보한 것을 교역자유화의 이익을 제고한 것으로 포장해버리는 식의 정책 추진은 에프티에이 안전 불감증이라 불릴 만하다. 정부가 이미 국회와 국민한테 약속한 미국과의 ISD 재협의를 추진할 의지가 남아 있다면, 투자부문에 일반적 예외조항을 적용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가야 한다.

규제개혁의 성과를 올리느라 정신이 없는 정부 부처들에 이번 참사는 심각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제2의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생명과 안전보호를 위한 규제는 철저하게 강화해 나가야 하는데, 전반적 규제 철폐 분위기 속에서 이걸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좀더 근본적으로, 정부 규제 철폐는 민간의 자율 규제로 이어지는데 민간의 안전 의식 및 문화가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을 오히려 높이는 결과를 낳지 않겠는가?

300명이 넘는 안타까운 희생이 교역자유화, 규제개혁, 안전이라는 국정 삼두마차의 균형을 잡아, 다시는 쓰러지지 않는 항해로 연결되길 바란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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