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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정말 열심히 살자꾸나” / 김영진

등록 2014-05-14 19:08

김영진 인천대 법과대학 조교수
김영진 인천대 법과대학 조교수
지난 4월 …,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소식이 연일 속보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애처로움과 슬픔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로 속은 들끓었지만, 그래도 본업인 강의를 소홀히 하면 안 되니 마음을 다잡고 ‘강의 준비 열심히 하자’고 반복해 다짐하던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학생이 갑자기 연구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오면서 울먹였습니다. “교수님, 친구 ○○의 동생이 세월호 타고 수학여행 갔었는데 실종 상태예요. 부모님이랑 같이 현재 진도에 내려가 있어서 다음주 중간고사도 치를 수 없을 것 같아요….”

갑작스런 소식에 저 역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얼른 “얘들아, 잘 알겠으니 절대 학교 출석이나 시험은 걱정하지 말라고 우선 전해주거라. 다른 수업 교수님들께도 내가 알려서 조처를 취하마”라고 말했습니다. 영어 교양 강좌는 원어민 선생님이라 짤막하지만 영어로 편지도 써서 상황을 전했습니다. 그 학생에게 출석이나 시험의 불이익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바로 이메일로 답장까지 보내준 원어민 선생님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상에는 국적이나 피부색을 초월해서 우리가 겪고 있는 큰 상처를 같이 아파해주고 위로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 와중에 사고와 관련한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희생자를 모욕하거나, 추모의 마음은 뒷전인 채 공적 지위를 망각하고 외유나 유흥을 즐기는 등 거의 정신질환 수준이 아닌가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들도 대한민국이란 공동체 안에 같이 사나 봅니다. 정중히 부탁드리니 생래적으로 측은지심이 없다거나 스스로 냉혈한의 기질이 있는 분들은 이런 시기에는 제발 조용히만 거동을 해주세요. 추모의 순수하고 숭고한 마음들을 비웃거나 방해하지만 말아주세요. 사고는 침몰하는 배 안에서 탈출 신호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던 순진한 아이들의 책임이 결코 아닙니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 우리의 최고 규범인 헌법 제10조 후단의 내용이지요. 희생자들에게 근조의 마음을 갖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반성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자연스레 읊조리는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운이 좋았던 덕택에”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살아남은 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해 살아나가는 것이 먼저 고인이 된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의 동생은 지난 나흘 연휴가 시작되기 전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지위’가 바뀐 채 가족 품으로 정말 늦게야 돌아왔습니다. 그는 연휴 기간 삼일장을 치르고 학교에 비로소 복귀하였습니다. 괜찮은 척, 태연한 척 하려는 모습에 말을 건네기 참 힘들었지만, 수업이 끝나고 연구실로 찾아온 그에게 진심을 담아 말하였습니다. “너무나 유감스럽고 진심으로 조의를 표한다. 앞으로 이 모진 시간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힘들고 문득문득 눈물 나는 날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강하게 먹자. 살아남은 사람들이 제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도리인 것 같다. 앞으로 정말 열심히 살자꾸나”라고요.

이제는 고인이 된 ○○의 동생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합니다. 더불어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로서 하늘나라로 가신 존엄하고 귀중한 생명들에게 삼가 머리 숙여 조의를 표합니다.

김영진 인천대 법과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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