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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권력의 외눈박이 공영방송을 막는 길 / 정연우

등록 2014-05-19 18:30수정 2014-05-20 16:32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청와대가 보도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 정황이 폭로되었다. 김시곤 <한국방송>(KBS) 전 보도국장은 대통령 관련 뉴스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도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가 작성한 ‘보도외압일지’도 공개되었다. 사실이라면 공영방송이기는커녕 정권 보위기관에 불과하다. 길환영 사장은 공영방송의 수장이 아니라 권력의 일개 하수인이었다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보도국 부장들마저 모두 사퇴하면서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자리 욕심에 사장과 권력의 눈에 들려고 안간힘을 쓰던 이들마저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 국민적 비난과 분노에 휩싸여 침몰하는 공영방송에서 살아남겠다고 먼저 탈출하기 위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갑자기 공영방송의 수호자로 변신한 듯 보인다.

국민적 지탄과 분노가 길 사장과 청와대로만 향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모든 책임을 사장과 정권에만 뒤집어씌우고 자신들은 면죄부를 얻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지는 않은지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자칫하면 길 사장과 몇몇 간부의 퇴진에만 초점이 맞추어질 수 있다. 인적 청산에 머문다면 곧 도로 관영방송이 될 게 뻔하다. 보직 사퇴를 결의하며 사장 퇴진을 압박했던 단호한 모습의 간부들도 다시 권력의 심부름꾼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약삭빠른 계산을 하는 자들이 잇달아서 나올 수도 있다. 더구나 정권의 방송 장악은 한국방송만이 아니라 <문화방송>(MBC)에도 이루어졌을 개연성이 높아서 공영방송 전반의 문제다.

먼저 할 일은 어떤 경로로 어떻게 권력이 방송에 개입했는지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다. 정부와 한국방송도 더이상 버티기 어려워 보인다. 만약 김 전 국장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다면 분명하게 해명하면 될 일이다. 그동안 국정원의 대선 개입 등에서 보여준 대로 모르쇠로 외면한다고 흐지부지될 사안이 아니다. 딴 일들이 잇달아 터지면 국민들은 잊어버리고 잠잠해지리라 기대할지 모르지만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 비등점을 향해 치달을 것이다.

방송 장악의 실상이 드러난다면 국민 여론을 모아서 제도와 관행을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사장의 언론철학과 가치, 신념에만 맡길 수는 없다. 개인은 무력하기 쉽고 압력과 유혹에 흔들리기 일쑤다. 우선 내부적인 견제장치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보도의 공정성이다. 우선적으로 보도본부장을 비롯하여 주요 간부의 임면에 구성원의 직선제 등 내부 구성원들의 의지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사장 등을 통해 들어오는 외압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독립성을 강화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더 근본적으로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사장을 사실상 임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현 제도에서는 ‘권력의 방송 장악, 낙하산 사장’ 논란이 사라지기 어렵다. 지난해 국회에서 방송 공정성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하였으나 별 성과 없이 끝났다. 당시에 공영방송 사장을 뽑을 때 여당 추천 이사만이 아니라 야당 추천 이사 중 일부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특별다수제가 해법으로 제시되었다. 그래야 ‘대통령만 바라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야당과 국민들에게 곁눈질이라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다수제는 공영방송이 권력을 향한 외눈박이가 되지 않도록 하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의사 결정의 표류와 비효율성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방송 장악의 유혹을 버리지 않겠다는 속셈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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