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논설위원
“채 피지도 못한 많은 학생들과 마지막 가족여행이 되어 버린 남은 아이, 그 밖에 눈물로 이어지는 희생자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며 저도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의 여행길을 지켜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듭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담화에서 한 말이다. 정치적 수사가 아닌 진심 어린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참사 대처 방식에 크게 실망했지만, 박 대통령의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정부의 후진적 행태를 지켜보며 대통령에게 얼마나 많은 비판이 쏟아졌는가.
‘5·19 담화’로 이런 분위기가 바뀔 수 있을까?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국가안전처 신설과 ‘관피아’ 폐해 해소, 기업의 탐욕적 사익추구 억제 등 안전대책이 지닌 의미는 결코 작지 않고, 진지하게 논의해볼 만하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함에 견줘 전체적으로 미흡하고 추진 방식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만하면 됐다고 여길 사람들이 어느 정도나 될까.
특히 ‘대한민국 대변혁’ 부분이 아쉽다. 박 대통령 얘기를 옮겨본다.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남은 우리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덧붙여 “국가개조”란 말도 입에 올렸다. 박 대통령의 이런 구상에는 공감한다. 사고 발생과 수습 과정을 살펴보니 더욱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부에 무얼 더 바라느냐며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꼭 그럴 일은 아니다.
문제는 내용인데,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나 할까. 국가의 개혁과 대변혁, 개조를 이루려면 안전체계뿐 아니라 경제사회 운용 틀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선 규제체계 정비가 중요한데 별다른 언급이 없다. 이번 참사가 빚어진 요인의 하나로 노후 선박의 나이 제한을 완화한 게 꼽히고 있다. 박 대통령도 “20년이 다 된 노후선박을 구입해서 무리하게 선박구조를 변경하고…”라고 밝혀 이런 점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관련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인허가 규제 업무…와 직결되는 공직 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을 임명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뿐이다. 올해 들어 규제완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그런 성싶지만, 실망스럽다. 규제를 섣불리 완화하면 위험하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또한 대한민국 대변혁을 위해서는 경제민주화가 필수이다. 대통령 선거 때 박 대통령은 “지금은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성장잠재력을 해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 저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그동안의 양적 성장에서 질적 발전으로 전환하고, 성장의 온기가 온 국민에게 골고루 퍼지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민주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함께 경제민주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담화에는 이와 연관된 대목이 눈에 띄지 않는다. 취임 3개월여 만에 자취를 감춘 경제민주화가 되살아나기를 기대한 게 어리석었나.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한 말을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인프라가 깔려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신뢰사회이다. 사회적 자본을 쌓는 것은 말만 외쳐서는 안 되고 구체적으로 지도자, 정부가 앞장서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할 때 촉진된다.”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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