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22일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함으로써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을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냈다. 안대희는 청렴하고 강직하며 깐깐한 사람이란 대중적 이미지를 지녔다. 박 대통령은 ‘안대희 발탁 카드’를 통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요동치는 선거 민심을 돌파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눈에 띄는 부분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권력 기반이 더욱 굳건해진 대목이다. 안대희 후보자는 “김 실장에 비하면 나는 발바닥이다. 우리 아이큐가 130~140 수준이라면 그분은 170대”라고 김 실장을 칭송한 적이 있다. 그는 김기춘 실장의 아득한 검찰 후배이며 서울대 법대 동문에다 같은 경남 출신이다. 여러 이력에 비춰 그가 총리로 임명된 뒤에 김기춘 실장을 대하며 총리에 걸맞은 자세를 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등 육사 출신들이 밀려남에 따라 권력의 무게중심은 ‘김기춘 라인’으로 급속히 쏠리게 됐다. 김기춘 실장을 정점으로 하는 율사 출신과 남재준, 김장수, 김관진 등 육사 출신 사이에 미묘한 알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하루 전인 4월15일 국무회의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김기춘 실장이 정규 멤버로 참석하도록 하는 내용의 즉석 안건을 처리한 바 있다. 당시 김기춘 실장 쪽이 ‘육사라인’을 견제한 결과란 해석이 많았다.
대통령 주변의 측근임을 내세워 위세를 떨쳐온 청와대의 ‘환관권력’ 또한 건재함을 과시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휘몰아친 거친 인사쇄신 파고를 무사히 넘기는 분위기다. 이정현 홍보수석과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이 그룹에 속한다. 이들은 청와대의 또다른 중핵으로 꼽힌다. 김기춘 라인과 암투를 벌인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힘이 막강하다. 이 그룹 또한 세월호 책임론에서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정현 홍보수석이 <한국방송>(KBS) 보도와 관련해 ‘협조 요청’을 했다는 사실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말이 ‘협조 요청’이지 그것이 ‘보도지침’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별로 없다.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상당 부분은 청와대 참모진 몫이다. 제대로 된 청와대 참모진이라면 사고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를 때까지 기초적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무능한 대통령’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무딘 상황 인식이 구조의 늑장과 수습의 부실로 이어졌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을 대폭 개편하지 않고서 세월호 사고의 책임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안대희 총리 발탁-김기춘 실장 유임’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청와대 참모진이 국정운영 기조를 좌우할 것이란 신호다. 김장수 실장이 경질된 것을 제외하고 청와대 참모진은 여전히 강성하다. ‘기춘대원군’의 힘은 더욱 커졌고 환관권력의 위상도 여전해 보인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이 깔아놓은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기관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일이 깔리지 않은 곳에서 기관차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도 김기춘 라인과 환관권력이 깔아놓은 국정운영 레일 위를 변함없이 달릴 것이다. 내각 위에 군림해온 청와대 참모진의 위력은 여전할 테고, 새누리당도 청와대의 뜻을 쉽게 거역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숱한 문제점을 드러낸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도 계속될 것이다.
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인적 쇄신 드라이브…세월호 묻히나? [오피니언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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