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앵그리맘’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40대 여성의 표심이 심상치 않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아이들의 학부모들과 비슷한 연령층이며, 2012년 대선에서는 55.6%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을 정도로 보수적 경향이 강했다.
40대 여성의 이상 징후는 일찍이 여론조사를 통해 감지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뚝 떨어졌음은 물론 ‘심판’을 위해 ‘인기 없는’ 야당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높게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앵그리맘들의 분노는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의 지방선거 배심원단 좌담회에서도 확인되었다. 배심원단 중 수도권에 거주하는 30대에서 50대 초반까지의 앵그리맘 11명의 발언을 따로 떼내어 분석한 결과 이들의 분노가 지방선거에서 투표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배심원단에 참여한 앵그리맘들은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질타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던 6명(나머지 5명은 문재인 지지)도 “인재라고밖에 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다. 대통령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거친 표현을 쏟아냈다. 이들이 표출하는 분노는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보다 강렬했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듯했다.
정치적 책임과 지지라는 민감한 대목에서는 다소 의견이 갈렸다. 그럼에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앵그리맘이 11명 중 4명에 이르렀고 2명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4명의 ‘계속 지지자’ 중에서도 2명은 혼란스럽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다는 데는 대부분의 앵그리맘들이 동의하면서도 막상 정치적 지지에서는 나뉘고 있었다. 지난 19일에 발표된 박 대통령의 ‘눈물 담화’가 정치적 선택의 분수령이 된 듯했다. 그래도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앵그리맘들은 “이제 도리를 한 것”이라며 면죄부를 주었다. 눈물 담화가 흔들리던 지지층의 감성에 호소해 이탈을 막는 데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이들이 박 대통령 지지로 회귀한 데는 존재감 없는 야권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은 누가 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냉소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보수적 선택으로 귀착되기 쉽다.
흥미로운 것은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11명이 한목소리로 “투표를 잘해야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가 정치 불신으로 인한 투표 기권보다는 적극적인 투표 참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동안 ‘엄마’들은 “내 새끼는 내가 지키면 된다”는 인식이 강했고 이것은 때때로 가족주의적, 보수적 행태로 귀결되곤 했다. ‘내 새끼’를 지킨다는 것은 이 거친 사회에서 ‘협력’과 ‘연대’보다는 ‘경쟁력 있는 인간’으로 클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나 혼자’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이 사회가 지켜줘야만 한다는 ‘각성’이 움트는 듯하다. 욕망과 교육열의 화신, 강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안전한 나라를 요구하며 가장 먼저 ‘외출’을 감행한 것은 마담방배, 서초엄마들의 모임 등 ‘강남맘’이었다. 강남의 이상 징후는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강남 4구에서 박원순 후보가 정몽준 후보를 앞선다는 조사 결과가 그것이다. 내 아이와 가족에 갇힌 시선이 사회로, 국가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 이른바 앵그리맘의 ‘가출’이다. 이 ‘외출’이 소중하고 반갑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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