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재무장관을 역임한 티머시 가이트너가 최근 낸 자서전이 워싱턴 정책 집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책을 관통하는 반복된 주장은 가이트너 자신과 재무부, 연방준비제도(Fed)의 동료들이 ‘제2의 대공황’ 위기에서 미국을 구했다는 것이다.
제2의 대공황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은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이 된 대규모 뱅크런 때 연준이 나서서 은행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당시 연준이 은행에 유동성을 풍부하게 공급하고, 예금자들이나 채권자들에게 지불보증을 했더라면 뱅크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해 은행이 연쇄적으로 문을 닫았고, 결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파괴했다. 수백만명이 평생 저축한 돈을 날렸고, 기업들의 운전자금도 날아갔다. 사람들은 급속도로 소비를 줄여 대량 실업을 야기했다. 가이트너와 동료들은 2008~2009년 금융위기로 인한 대규모 붕괴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각오가 돼 있었다. 그러나 금융 붕괴는 대공황 상황의 일부일 뿐이다. 대공황은 오래 지속됐고, 실업률이 두자릿수까지 치솟았다.
단기적으로 수요가 준 것이라면 대처 방법은 단순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37년 <일반 이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돈을 풀면” 된다. 1941년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할 때 대규모 지출로 케인스 이론을 시험할 수 있었다. 실제 케인스가 예견한 대로 이뤄졌다. 경제가 살아났다. 군사 지출의 경제적 영향은 다른 지출의 영향과 다르지 않았다. 만약 미국 정부가 1941년이 아니라 1931년에 사회간접자본 건설이나 교육, 의료 보장에 대규모 지출을 했더라면, 실업률은 이미 10년 전에 평상 수준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금융 공황으로 인한 초기 침체는 신속하게 진정됐을 것이다.
대공황 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10여년 전 아르헨티나 사례를 봐야 한다.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는 국가 부도를 선언했고 자국 화폐의 달러화 연동을 폐기했다. 은행은 예금자에게 돈을 지급할 수 없었고, 기업은 운전자금이 없었다. 경제는 추락했고 아르헨티나는 공황에 빠졌다. 그러나 침체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부의 적절한 대응으로 이듬해 2분기에는 경제가 안정됐고, 하반기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2003년 말까지 사실상 위기 전의 상황으로 경제가 완전히 회복됐다. 2004년 말에는 경기 후퇴기로 접어든 1998년 이전보다 경제 규모가 더 커졌다. 이런 성장세는 2009년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멈출 때까지 지속됐다.(이 시기 후반부 통계의 정확성에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2004년 통계가 거의 정확하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아르헨티나의 전면적인 금융위기와 은행 시스템 붕괴는 미국에서라면 가이트너와 그의 친구들이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을 일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대공황 때와 같은 시련을 겪지 않았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 재빠르게 경제를 일으켰다. 아르헨티나의 사례로 볼 때,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이 금융파국 때 무력하게 대응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미국 의회가 재정 지출을 늘리거나 감세로 서민 주머니에 돈이 돌도록 하지 못했을까? 연준이 지난 5년 반 동안 보여줬던 통화 확대 정책을 수행하지 못했을까?
아르헨티나와 미국 사이엔 차이가 있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붕괴했다면 아르헨티나보다 훨씬 큰 규모의 지구적인 결과를 불러왔을 것이다. 다른 한편 붕괴 뒤에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지배적인 경제로 남고, 달러도 지배적인 본원통화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제2 대공황 주장이 맞는 얘기인지 여부는 가이트너 장관이나 부시-오바마 경제팀의 위기 대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10년 동안 두자릿수 실업률을 걱정해야 한다면 경제가 아직 취약하고 실업률이 높은 상태라 할지라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제2 대공황이 단지 무서운 이야기일 뿐이었다면, 사람들은 현재의 경제 상황에 분노할 것이다. 여러 증거들을 본다면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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