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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밀양을 살다

등록 2014-06-09 18:13수정 2014-06-09 21:37

“이 골짜기 커갖고 이 골짜기서 늙었는데 6·25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안 했다. 이건 전쟁이다. 이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다. 일본시대 양식 없고 여기 와가 다 쪼아가고, 녹으로 다 쪼아가고 옷 없고 빨개벗고 댕기고 해도 이거 카믄. 대동아전쟁 때도 전쟁 나가 행여 포탄 떨어질까 그것만 걱정했지 이러케는 안 이랬다. 근데 이거는 밤낮도 없고, 시간도 없고. 이건 마 사람을 조지는 거지. 순사들이 지랄병 하는 거 보래이. 간이 바짝바짝 마른다. 못 본다 카이, 못 봐.” 지난달 가슴 아프게 읽은 책 <밀양을 살다>에서 만난 이 목소리가 며칠 전 꿈속까지 따라 들어왔다. “이 공사를 어떻게 멈출 수 있겠노.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답이 없고. 우리를 이렇게 시들시들 말려죽이지 말고 총으로 쏴서 죽여 달라”는 할머님들의 목소리.

지난 4일 지방선거 있던 날, 밀양 농성장에 20여명의 사복경찰이 들이닥쳤다. 격렬한 충돌이 있었고 주민 1명이 부상당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집회가 어언 10년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의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 움막농성장의 행정대집행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9일부터 16일까지 최소 1주일간 밀양은 또다시 전쟁터다.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밀양의 할머님들이 뼈가 오그라드는 팔순 나이에 맞닥뜨린 이 현실 앞에 벗들이여, 질문해주시기를. 사람을 죽여서 얻는 전기가 꼭 필요한 것인지를.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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