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진보정당들의 위기는 단지 진보정당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정당 절대우위의 정당체제, 즉 진보정당 없는 정당체제에서 민주주의의 순행을 기대할 수는 없다. 헌정체제의 정착과 지속도 힘겹다. 보수가 원래 반민주세력이라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진보정당들로부터 견제받지 않는 보수권력은 오만과 독선으로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배가 아닌 견제를 통해 작동하는 공화적 질서의 유지와 재생산이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진보정당들의 위기는 정치의 위기이고 사회의 위기다.
최근 진보정당들의 상황을 보면 위기라는 말조차 한가하다. 몰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너무나 참담한 성적을 거두었다.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통틀어 광역단체장 선거 17곳과 기초단체장 선거 226곳에서 단 한곳도 얻지 못했다. 광역의원은 지역 705석 중 1석, 비례 84석 중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광역의회 의석점유율이 불과 0.5%인 것이다. 기초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 2898석 중에서 단 51석을 얻었을 따름이다. 의석점유율 1.76%다. 2010년 지방선거 때는 의석점유율이 광역의원은 4%, 기초의원은 5.6%였다. 이번 지방선거를 변곡점으로 진보정당들은 제3세력은커녕 소금의 역할을 한다는 2% 정당의 지위마저도 상실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만을 갖고 위기 혹은 몰락 운운하는 것이 아니다. 부유세, 상가임대차 보호법, 무상의료, 무상급식,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 참신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지 너무도 오래다.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보면 국민적 관심과 기대를 끌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알려낼 활력도 실력도 사람도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2008년에서 2012년 사이 무려 세 차례에 걸쳐 분당 사태를 겪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으로의 분당이 그것이다. 그런 중에 양질의 자원을 잃었다. 정당 인지도도 현저히 떨어졌다. 심지어 국민 인지도가 70~90%에 이르는 노회찬과 심상정 같은 정치인들이 몸담고 있는 정당의 이름조차 다수의 유권자들이 알지 못한다.
진보정당들은 부활해야 한다. 진보정당의 위기 혹은 몰락이 아니라 정치의 위기, 사회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 양당체제와 분열과 선거제도와 종북몰이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주어진 환경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 환경과 싸운다며 민생을 챙기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부조리하게 보인다 해도 주어진 환경에 부합하는 목표와 전략을 벼려야 한다. 지금과 같이 구래의 정파운동단위에 기대어 이리저리 나누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성을 명분으로 덩그러니 소수 약체 정당으로 머물고 있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 네트워크 형식으로라도 기존 정당의 좋은 정치인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 이를 통해 모든 정당들이 수용했지만 실제로는 방치해놓고 있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을 추동해야 한다. 그 성과에 바탕해 새로운 대안정당을 모색할 수 있다. 그것이 만들어지면 바로 그 정당이 진짜 진보정당이다. 지난 시기의 운동이념과 경력이 아니라, 민생 개선을 위한 실천과 구체적인 성과를 통해 국민적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부활을 위해서는 진보정당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으로 끝맺는 경로를 구상하고 따라야 한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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