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파괴보다 더 치명적이다.’(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
파괴는 부서지는 것이다. 어떤 대상물에 감당하기 어려운 힘이 작용해 심하게 손상되는 현상을 말한다. ‘부숴버릴 거야’라는 드라마 대사는 극단적인 분노와 복수심을 표현한다. 반면 스트레스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친근하기까지 한 용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과 성취욕을 북돋운다. 그런데 왜 스트레스가 더 치명적일까?
생태학의 권위자인 김 교수가 이 말을 한 것은 질경이에 대한 설명에서다. 생태학에서는 생명체가 외부로부터 받는 영향을 크게 스트레스와 물리적 파괴로 나눈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 전체가 반응하지만 파괴는 그 부분만이 손괴를 입는다.
‘질겨서’ 질경이라는 말도 있지만 길에서 살기에 질경이라는 게 정설이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길’을 ‘질’로 발음한다. 길에서 자라려면 사람과 동물, 탈것 등에 밟히고 깔려서 몸의 일부분이 찢겨 나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질경이는 숲 속에서 다른 생물들과 경쟁하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파괴되는 쪽을 선택했다. 질경이는 물기가 많은 장마철에 왕성하게 꽃피우고 사람이나 동물의 발에 붙어 씨앗을 퍼뜨린다.
생물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평형 상태가 깨진다. 초기에는 자체 저항력으로 이겨낼 수 있지만, 일정한 선을 넘어버리면 여러 이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사람의 경우 스트레스의 원인은 대부분 바깥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불안한 인간관계, 너무 큰 기대, 불안정한 생활양식, 지나친 분노, 모자라는 잠 등이 그것이다. 스트레스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미병(未病)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미병은 병은 아니지만 병으로 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질경이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지혜와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흔하다고 해서 예사로 볼 게 아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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