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기림비’는 미국과 일본, 우리나라에 설치되어 있다. 국회가 밝힌 국내 ‘기림비’를 찾아보니 ‘평화비’(주한 일본대사관 앞), ‘정의비’(正義-, 통영시 남망산조각공원), ‘해원비’(解寃-, 공주 영명고등학교) 등으로 새겨진 이름이 각기 달랐다. 미국 뉴욕과 뉴저지, 캘리포니아에 세워진 조형물에는 ‘위안부’(Comfort Women), ‘성노예’(Sexual Slavery), ‘~추모하며’(In Memory)라는 표현이 등장할 뿐 ‘기림비’라는 명칭은 확인할 수 없다.
“‘위안부’나 ‘위안부의 넋’을 ‘기리는 것’이 말이 되는가. ‘뛰어난 업적이나 바람직한 정신, 위대한 사람을 추어서 말하다’의 뜻인 ‘기리다’와 ‘위안부’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중비’(恨中碑)라 하는 건 어떨까.” 국립국어원에 들어온 민원 내용이다. 이 얘기를 듣고 한국어문기자협회가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었다.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위안부)기림비’ 명칭 검토 민원은 일리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추념비’, ‘불망비’가 ‘기림비’를 대신할 명칭으로 제시되었다. ‘추모비’는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를 고려하면 적절하지 않은 명칭이어서, ‘물망비’(勿忘-)는 물망초의 꽃말 ‘나를 잊지 마세요’를 떠올리게 하지만 낯설다는 이유로 제외하였다. ‘추념비’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는 뜻이 담긴 명칭이다. ‘불망비’(不忘-)는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사실을 적어 세우는 비석’으로 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다. 학생들은 왜 ‘해원비’라 했을까. “‘위안부’를 기린다는 말은 얼토당토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학생 회의를 통해 ‘(위안부 할머니의) 원한을 풀어드리는 비석’이라는 명칭으로 결정했다.” 공주시 청소년기자단이 누리집에 올린 내용이다. 학생들의 뜻이 갸륵하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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