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한국 경제가 이중고에 시달려온 지 오래다. 거시적으로는 성장이 안 되고 미시적으로는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1980년대 8.6%, 90년대 6.7%이던 경제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서는 4.4%로 하락하더니 2010년대에는 2~3%대까지 떨어졌다. 소득불평등도도 점점 높아졌고, 삼성, 현대, 엘지, 에스케이 등 4대 재벌이 1년에 올리는 매출액이 이제는 국내총생산(GDP)의 60%에 육박할 정도로 재벌 의존도가 커졌다.
“달걀은 여러 바구니에 나누어 담아야 한다”는 격언과는 반대로 한국 경제는 오로지 한 바구니에만 집중하여 달걀을 담고 있는 모습이다. 경제적 힘이 한쪽으로만 쏠리면서 위험에 대한 노출이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제 전체의 활력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를 이대로 놔두면 경제가 쇠약해짐은 물론이요 언젠가는 사회 전체도 결속력을 잃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게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기준 변경으로 경제문제를 풀려는 듯하다. 그런데 엘티브이와 디티아이는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핀이다.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섣불리 없애버리면 안 된다. 불필요한 규제는 당연히 없애야 하지만 규제완화만으로 경제 전체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의 성장효과를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설혹 다소의 성장효과를 얻는다 하더라도 양극화를 비롯한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들은 더욱 악화될 것이 뻔하다.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규제 때문이 아니다. 대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보유하고 있으나 투자 대상이 마땅치 않고 중소기업들은 투자 대상은 상당히 있으나 돈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은 첨단·핵심기술이 부족해서 투자를 못하고 있다. 첨단·핵심기술을 갖추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한국의 연구개발(R&D) 지출은 세계 수준으로 올라왔으나 진정한 의미의 연구는 사실상 소홀히 해왔다. 앞으로는 개발(D) 중심에서 연구(R) 중심으로 방향을 틀어 첨단·핵심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으로 자금이 원활하게 흘러들도록 유도한다면 생각보다 금방 문제가 풀릴 수 있다. 내가 동반성장위원회를 맡고 있을 때 시작한 초과이익 공유(협력이익배분),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 발주 등도 결국은 대기업에서부터 중소기업으로, 중소기업에서 가계로의 자금순환이 원활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미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동반성장을 통해 투자 대상은 있으나 돈이 모자라 투자를 못하던 중소기업들이 투자를 하게 된다면 생산 증가, 고용 증가, 가계소득 증가 및 수요 증가의 연쇄적 선순환을 일으켜 경제활력을 회복하고 저성장에서 벗어나는 데에 중요한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중소기업 위주의 신산업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이 대기업의 70~80%는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중소기업으로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한국 경제를 되살리는 길은 동반성장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정부가 원하지 않는 일을 이루어내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한 2010년 12월13일 당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동반성장의 뜻을 마음껏 펴십시오. 그리고 백댄스는 우리에게 맡겨주십시오.” 아무도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던 나로서는 너무도 고맙게 들었던 약속의 말이었다. 최경환 부총리 후보자도 그 약속의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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