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다. 학생의 자율·선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행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그렇다. 자율·선택이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려주기는커녕 과도한 과목 편식을 강요함으로써 학생의 지적 건강과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을 핑계로 밀어붙이고 있는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이 확실하다.
학생들이 선택해야 하는 과목들이 황당할 정도로 잘게 쪼개져 있다. 국어는 화법, 작문, 독서, 문법, 문학, 고전 등 8과목으로 쪼개져 있고, 수학은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와 벡터 등 6과목으로 분리되어 있다. 영어도 독해, 회화, 작문 등 8과목으로 갈라져 있고, 사회는 한국지리, 세계지리, 한국사, 동아시아사, 경제, 법과 정치, 사회·문화 등 무려 11과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과학도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으로 잘라져 있다.
대학의 전공과목이라면 과목 세분화가 문제 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식기반의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초 소양 교육을 추구하는 고등학교에서의 과도한 과목 쪼개기는 사정이 다르다.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과목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화법과 작문은 배우지만 독서와 문법은 완전히 포기하는 학생이 있고, 한국사와 한국지리는 배우지만 세계사와 세계지리에는 문외한인 학생도 많다. 심지어 과학을 완전히 포기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창의 교육을 명분으로 학생들의 자율·선택을 처음 도입했던 1998년의 제7차 교육과정이 이공계 기피를 촉발시킨 것도 학생들의 과목 편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고등학교에서 과학, 체육·미술, 제2외국어가 통째로 사라지고 있다.
선택의 폭이 지나치게 넓은 것도 편식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미 교육부는 지난해 말에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의 최소이수단위를 슬그머니 축소해버렸다. 작년에 필수로 전환된 한국사를 포함하더라도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선택하는 과목의 절반 이상이 학생의 자율·선택에 맡겨져버렸다.
문제는 최소이수단위의 축소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과학으로 떠넘겨진다는 것이다. 국어, 영어, 수학은 어차피 누구나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핵심 도구과목이고, 사회는 수능에 유리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과 학생들의 과학 교육은 대부분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최소이수단위로 끝나버린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수능에서 불리하다면 선택할 이유가 없다.
문과 출신의 교육학자들이 최소이수단위를 축소하고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은 학생을 위해서가 절대 아니다. 교실과 교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 진정한 자율·선택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학교는 수능에서 유리한 과목을 더 많이 가르칠 수밖에 없다. 과학보다 사회를 선택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학자들이 자율·선택의 폭을 확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서로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사범대 학과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교육학자들에게 공교육이 추구해야 할 전인교육이나 국가의 미래 경쟁력 강화는 공허한 구두선일 뿐이다. 일제가 남겨준 비정상적인 문·이과 구분 교육의 정상화는 공급자 중심의 교육에 집착해서 책임 회피에 급급한 교육학자들에게 맡겨둘 수가 없다. 진정한 공교육의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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