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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학교가 스스로 소생할 호흡과 시간을!

등록 2014-07-01 18:27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드디어 학교가 달라질까?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3곳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다. 국민들은 “사람보다 돈”을 우위에 두는 체제를 더 이상 묵인 않기로 한 것이고 특히 학교를 바꾸겠다는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미 서울에서는 교육감 당선자와 시장이 만나 함께 교육 문제를 풀어가기로 했다고 하니 새로운 학습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이런 소식이 반갑기만 한 건 아니다. 교육 문제가 워낙 고질적임을 알고 있기에 실은 오히려 불안하다. 그래서 ‘진보’ 교육감 당선자들께 몇가지 당부를 드려볼까 한다.

첫째로 섣불리 수술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지금 학교는 중병을 오래 앓아 합병증에 치매까지 걸린 상태다. 치매에 걸린 교장이나 교사는 학교가 잘 굴러가고 있다며 숨가쁘게 달리고 있지만 그런 ‘성과 없는 성과주의’는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일부를 수술하면 잘될 것이라며 이런저런 제도에 손을 대는 낙관은 금물이다. 지금은 환자의 상태를 직간접적으로 유지 존속시켜온 당사자들이 모여 학교와 자신을 거리 두며 낯설게 보는 능력을 키워야 할 때이다. 산소호흡기와 마취제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는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환자가 살고자 하는 의욕을 보이면서 기운을 차리는 과정은 생략하고 수술부터 하려 든다면, 소생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둘째로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히지 말기 바란다. 이웃에 사는 친구가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이 나왔을 즈음 이렇게 말했다. “좌파들 시끄러워 죽겠어. 그냥 좌파들이 정권을 잡아버렸으면 좋겠어. 좀 조용해지게.” 좌파를 향한 이 엄청난 불신과 적대의 감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정의롭고 똑똑하며 헌신적인 진보세력이 미움을 받는 이유가 뭘까? 혹자는 좌파가 ‘세련되게 분노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잠시 이기고 지는 게임은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교육은 돌봄과 소통과 살림의 장이 아닌가? 무지막지한 제도 권력에 맞서면서 그쪽에 힘을 실어주기보다, 안팎에서 환대의 세상을 만들어가며 그 자체를 무력화시켜내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이다.

그래서 당부하건대 오로지 ‘학생’만 생각하길 바란다. 그간 학교는 학생을 하찮은 존재로 취급해왔다. 학생들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곳이 있는데 그것은 교육시장이고 대접은 부모가 대줄 수 있는 돈의 액수에 비례한다. 학생들은 한정된 대학과 직장을 놓고 아귀다툼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꿈과 끼를 발견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말도 하지 말기 바란다. 이들은 부모 세대가 살던 경제성장기가 아니라 ‘성장 이후’ ‘경제 기적 이후’ ‘재난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하듯 이들은 문명적 전환을 해내야 하는 세대이다. 그러니 오래전 안경을 쓴 어른들은 아이들 스스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삶을 책임질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을 믿고 그들로부터 배우며 학교를 함께 바꾸어내야 할 것이다. 과로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쉬게 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한 이들은 재난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사회를 살아낼 회복 탄력성을 키우면서 스스로 일자리와 일거리를 만들어가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래서 ‘진보’ 교육감들은 학교에서 스스로 증세를 이야기하는 말들이 터져나올 때까지 좀 기다려주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학교가 어떻게 유지 연명되고 있는지를 알아가면서 환자 스스로 깨어나 살고 싶어지게 하는 마술을 부려서 말이다. 다행히 이미 생기있는 가벼운 학교들이 생겨나고 있다. 성장과 선발이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공존을 고민하는 이 학교들은 대부분이 작은 학교들이고, 학생과 어른 모두를 위한 창의적인 공공지대의 모습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학예회와 운동회, 성년식이 학교의 핵심 커리큘럼인 새 학교는 세대가 어우러지는 즐거움과 지혜로움이 넘쳐난다. 당부컨대 교육감들은 십년을 내다보며 천천히 가시기를!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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