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중 의료전문기자
우리나라에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좋아하는 의사’를 물으면 가장 많은 답이 ‘설명 잘해 주는 의사’다. 즉 어떤 원인으로 해당 질병이 생겼는지, 치료 뒤 회복될 가능성은 얼마인지, 혹은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등을 잘 알려주는 의사다. 의사들도 의과대학을 다니는 동안 환자의 치료 동기를 북돋아 경과가 좋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설명 잘할 것을 교육받는다. 특히 환자 스스로 질병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암이나 심장병 등 각종 만성질환이 많아지면서 환자와의 의사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의사들 입장에서도 환자와의 소통을 잘하면 치료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의료분쟁의 가능성도 크게 떨어진다는 보고도 많다.
설명 잘해 주는 의사를 선호한다는 것은 반대로 우리나라 의사들은 설명을 잘 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큰 대학병원 외래를 찾으면 30분~1시간 정도 대기하다가 의사와 얘기하는 시간은 채 3분도 되지 않는 것은 이미 고착된 풍경이다. 또 외래 진료실이 2~3개가 있어 의사가 이를 번갈아 가며 진료하는 것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의사에게 물어보고 설명 들을 것은 많으나, 그럴 시간이 없다.
이런 현실에서는 의사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3~4시간의 외래 진료에서 많게는 200~300명까지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교과서에서 배웠던 ‘전인적인 진료’는 불가능하다. 진료 시간이 짧다 보니, 환자의 증상이나 치료의 부작용을 놓쳐 의료사고를 내지는 않을지 걱정도 해야 한다. 결국 자세한 설명보다는 잦은 검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의사나 병원 입장에서 효율적이며, 환자의 전체적인 건강보다는 검사 수치에 의존하게 된다.
지난 2일 공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의료 통계자료 2014’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먼저 의사 수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환자 진료를 하는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1명으로 오이시디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간호사 수 역시 인구 1000명당 우리나라가 4.8명(간호조무사 포함)으로 오이시디 최저 수준이며, 회원국 평균 수치인 9.3명의 절반가량이다. 게다가 환자들의 외래 진료 방문 횟수는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우리나라 국민 1명당 한해 평균 14.3번의 진찰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오이시디 평균 횟수인 6.9번보다 2.1배 높다. 병원을 한번 찾더라도 의사에게 제대로 설명을 들었다면, 환자는 병원을 자주 찾아야 하는 괴로움이 줄 것이고, 의사들도 짧은 진료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괴로움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의학적인 검사는 의사나 환자나 많이 하고 받아야 안심할 수 있다 보니 고가의 영상촬영장비는 우리나라가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쪽에 속한다. 엠아르아이(자기공명영상촬영·MRI)만 해도 우리나라는 인구 100만명당 23.5대로 오이시디 평균인 14대보다 70% 더 많다. 보유 대수의 증가 폭도 엄청나다. 엠아르아이 보유 대수는 최근 5년 동안 47%나 증가했다. 그사이 우리나라의 의사도 환자도 아닌, 값비싼 엠아르아이 등을 제조해 수출하는 외국계 의료기기 회사만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한 가정도 그렇듯 한 나라가 쓸 수 있는 의료비는 한정돼 있다.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써야 한다는 말이다. 환자나 의사 모두 만족하지 못할 정도로 짧은 진료시간을 계속 유지하면서, 각종 검사만 받게 하고 다른 나라의 거대 의료기기 회사만 배불려 주는 의료 체계는 ‘정상’이 아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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