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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지렁이

등록 2014-07-08 18:30

지렁이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목숨 있는 것들은 다 울지요. 심지어 기뻐서 눈물이 터질 때도 있지요. 누군가 자신의 고민과 상처를 이야기하다 울음을 터뜨렸다면, 그 사람은 괜찮은 거예요. 운다는 건 상처를 극복할 힘이 있다는 거지요. 유마의 말을 빌려야겠네요. 세상이 죄다 병들었는데 나만 희희낙락할 수는 없는 거라고요. 다 아픈데 나만 안 아플 순 없는 겁니다. 목숨 있는 존재란 누군가에 기대어 존재하게 되어 있는 거니까요. 그러니 울음은 웃음만큼이나 소중한 겁니다. 울음은 자기를 비워내는 강력한 몸의 말이지요. 유기농 퇴비 만드는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비닐하우스 가득 놓인 항아리들 속에서 지렁이들이 퇴비를 만들고 있었지요. 발소리를 죽이고 귀를 쫑긋해보았습니다. 청각이 예민한 지렁이들이 인기척을 알아채고 조용해지기 전까지, 짧은 순간이나마 지렁이 울음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 농부는 자신이 우주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여리지만 분명한 울음소리 혹은 노랫소리. 모두 잠든 밤 조용히 땅 위로 나와 달빛을 즐기는 지렁이를 상상해보세요. 세상에서 단 한순간도 다른 생명을 착취해본 적 없는 지렁이. 참,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이 있지요. 이런! 지렁이는 안 밟아도 꿈틀합니다. 꿈틀하는 역동이 생명의 본질이니까요. 밟아야만 꿈틀한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지렁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합니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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