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7일 ‘공화국 정부 성명’에서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과 관련한 역사적 문건에 생애 마지막 친필을 남긴 때로부터 20년이 되는 7월7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근거의 하나로 이른바 ‘김일성 통일문건’을 거론한 것이다.
이 문건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이 문건을 부각시켰다. 이후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6월30일 ‘국방위원회 특별제안’ 등에서 여러 차례 이 문건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 문건의 내용이 뭔지는 공개된 적이 없다.
남북한은 사상 처음으로 1994년 7월25~28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김일성은 이 회담 준비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는 보통 7월이면 더위를 피해 함경북도(양강도) 삼지연에 갔지만 이해에는 7월3일부터 평안북도 묘향산 초대소에 머물렀다. 김영삼 대통령이 머물기로 예정됐던 곳이다. 김일성은 이곳에서 3건의 친필 서명을 남겼다. 5일의 김형직 사범대학 현판 서명, 6일 단군릉 설계 일부 변경안과 관련한 문건 서명, 7일 정상회담 의제 가운데 통일 문제와 관련한 문건 서명이 그것이다. 김일성은 8일 새벽 2시쯤 숨졌다. 북한 당국은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일성이 “심장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다가 겹쌓이는 과로로 인해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해 심장쇼크가 합병돼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후 정상회담은 취소되고 남북 관계도 경색된다.
세 건의 서명은 평양의 조선혁명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북쪽은 2008년 평양을 찾은 6·15남쪽위원회 언론 대표단에게 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북쪽이 지금도 ‘한반도 비핵화는 대원수님들(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김일성 통일문건에는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긴장 완화 등을 비핵화와 연계하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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