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 국제사회학과 교수
자위대 창립 60주년 기념일인 7월1일, 아베 총리는 끝내 내각결의를 통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승인했다. 헌법 9조라는 사슬에 의해 주변 유사사태 및 분쟁지역에 대한 공식적인 무력파병을 제한받아 왔던 일본이 개별적 자위권이라는 방패를 버리고,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창을 든 채 스스로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다. 하지만 아베 내각은 헌법 개정을 하지 못했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공식적으로 변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자위대의 무력 행사는 제한된 조건과 한계 속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집단적 자위권 승인에 대해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했다, 전쟁국가가 됐다는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일본의 변화된 내부 상황을 고려해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대일외교를 재고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취임 전후에 일어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발언, 아베 총리의 고노 담화 및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재검증 움직임 등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 속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뒤 통상의 일본 방문을 건너뛰고 6월 중국을 먼저 방문한 외교행보를 보인 이후, 일본의 우익만이 아닌 일반 대중매체가 반한감정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중국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동맹이라고 생각했던 한국에 대한 일본 사회의 실망과 분노의 표현이었다.
일본의 역사문제 왜곡과 치밀한 군사화의 행보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반일전선으로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시기에 비해 무역량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일본에 비해,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매년 높아져가는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와 전략적 협력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대립과 협력을 반복하고, 북-일 접근이 구체화되고 있는 등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국의 국익이 장기적으로 관철되기 위해서 대중, 대미, 대일 외교는 전략적이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체면과 명분을 중요시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 한-일 정상회담을 실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의 보수세력 및 아베 총리에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하고, 미국 및 국제사회에 일본의 행위를 비난함으로써 일본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은 결국 일본의 외교적 변화를 전혀 이끌지 못했고 오히려 역반응이 더 심했다.
한-일 정상회담이 눈에 보이는 성과는 많지 않을 수 있지만 대화에 응하는 것은 일본 내 혐한세력들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위축된 자유주의 세력들의 아베 노선에 대한 반대에 명분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일본의 미디어를 통해 박근혜 정부는 독도는 한국의 고유의 영토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여성 대통령으로서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전문가 그룹을 통해서 해결하자, 경제협력은 상호이익을 위해 추진하고, 제2·제3의 한류를 활성화시키자, 후쿠시마 지원 및 민간 차원의 교류는 확대하지만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반도 문제인 만큼 한국과 사전에 긴밀히 협력을 요구한다는 등 대통령이 직접 일본 시민사회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일 정상회담은 무엇보다 최근 일본 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혐한적인 언사를 완화시킬 수 있는 효과도 기대된다.
북한도 상황이 복잡하겠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총련 건물의 매각이 의미하는 재일조선인 사회의 충격을 고려해 북-일 교섭에 나섰고, 납치문제 재조사까지 합의했다. 일본에선 한국의 60만 재일동포와 뉴커머들이 혐한데모와 아베 내각의 연이은 강경정책 아래서 매일매일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아베 내각에 대한 방치는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아베 총리 및 군국주의자들의 염원인 헌법 개정과 군국주의로의 길을 닦아주는 촉진제가 되고 있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2015년 한-일 국교정상회담 50주년이 최악의 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한-일 정상회담 카드로 적극적인 개입외교를 하자.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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