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한-일 정상회담으로 개입하자 / 이영채

등록 2014-07-13 18:37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 국제사회학과 교수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 국제사회학과 교수
자위대 창립 60주년 기념일인 7월1일, 아베 총리는 끝내 내각결의를 통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승인했다. 헌법 9조라는 사슬에 의해 주변 유사사태 및 분쟁지역에 대한 공식적인 무력파병을 제한받아 왔던 일본이 개별적 자위권이라는 방패를 버리고,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창을 든 채 스스로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다. 하지만 아베 내각은 헌법 개정을 하지 못했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공식적으로 변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자위대의 무력 행사는 제한된 조건과 한계 속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집단적 자위권 승인에 대해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했다, 전쟁국가가 됐다는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일본의 변화된 내부 상황을 고려해 냉정하고 전략적으로 대일외교를 재고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취임 전후에 일어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발언, 아베 총리의 고노 담화 및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재검증 움직임 등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 속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뒤 통상의 일본 방문을 건너뛰고 6월 중국을 먼저 방문한 외교행보를 보인 이후, 일본의 우익만이 아닌 일반 대중매체가 반한감정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중국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동맹이라고 생각했던 한국에 대한 일본 사회의 실망과 분노의 표현이었다.

일본의 역사문제 왜곡과 치밀한 군사화의 행보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반일전선으로 연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시기에 비해 무역량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일본에 비해,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매년 높아져가는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와 전략적 협력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대립과 협력을 반복하고, 북-일 접근이 구체화되고 있는 등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국의 국익이 장기적으로 관철되기 위해서 대중, 대미, 대일 외교는 전략적이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체면과 명분을 중요시하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 한-일 정상회담을 실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의 보수세력 및 아베 총리에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하고, 미국 및 국제사회에 일본의 행위를 비난함으로써 일본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은 결국 일본의 외교적 변화를 전혀 이끌지 못했고 오히려 역반응이 더 심했다.

한-일 정상회담이 눈에 보이는 성과는 많지 않을 수 있지만 대화에 응하는 것은 일본 내 혐한세력들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위축된 자유주의 세력들의 아베 노선에 대한 반대에 명분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일본의 미디어를 통해 박근혜 정부는 독도는 한국의 고유의 영토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여성 대통령으로서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전문가 그룹을 통해서 해결하자, 경제협력은 상호이익을 위해 추진하고, 제2·제3의 한류를 활성화시키자, 후쿠시마 지원 및 민간 차원의 교류는 확대하지만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반도 문제인 만큼 한국과 사전에 긴밀히 협력을 요구한다는 등 대통령이 직접 일본 시민사회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한-일 정상회담은 무엇보다 최근 일본 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혐한적인 언사를 완화시킬 수 있는 효과도 기대된다.

북한도 상황이 복잡하겠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총련 건물의 매각이 의미하는 재일조선인 사회의 충격을 고려해 북-일 교섭에 나섰고, 납치문제 재조사까지 합의했다. 일본에선 한국의 60만 재일동포와 뉴커머들이 혐한데모와 아베 내각의 연이은 강경정책 아래서 매일매일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아베 내각에 대한 방치는 우리의 의도와는 달리 아베 총리 및 군국주의자들의 염원인 헌법 개정과 군국주의로의 길을 닦아주는 촉진제가 되고 있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2015년 한-일 국교정상회담 50주년이 최악의 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한-일 정상회담 카드로 적극적인 개입외교를 하자.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학 국제사회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