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사회부장
카스트로를 제거한다며 백주에 쿠바를 쳐들어간 ‘피그스만 침공 작전’이 실패하자 미국 중앙정보국(CIA·시아이에이)이 무사할 리 없었다. 자리보전을 꾀하던 국장이 ‘비자금 제보’에 날아간 뒤 내부 승진의 행운을 챙긴 신임 국장은 감찰단 회의에 출석하기 전 비장한 대사를 던진다.
“감찰단 회의가 있어. 웃기지? 지들이 뭘 안다고. 전에 한 의원이 묻더군. ‘왜 CIA를 적을 때 정관사를 안 붙이냐’고. 난 되물었지. ‘신 앞에 정관사를 붙이냐?’고.”
영화 <굿 셰퍼드>가 그려낸 시아이에이는, 그러나 현실의 시아이에이보다는 한참 순했다. 1974년 하필 성탄절에 포드 대통령은 시아이에이의 사찰, 도청, 불법 수색 사실 등이 담긴 키신저 보고서를 ‘선물’받는다.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사찰이나 정보활동을 할 수 없다는 시아이에이의 내규는 그저 장식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 얘기를 바다 건너 고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음습한 공작에 관한 한 시아이에이에 절대 뒤지지 않을 중앙정보부는 그 뒤 두 차례나 ‘신장개업’ 간판을 내걸었지만,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청 사실이 드러나 전직 원장들이 구속된 뒤에도 대선 댓글 공작 의혹에다 간첩 증거조작 의혹까지 들통 나 재판을 받는 지경이 돼 있다.
그사이 다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민주화 이후 취임한 국정원장들치고 정치관여 근절을 강조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정치중립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조직문화로 확고히 자리잡게 해야 하겠습니다.” 댓글 사건으로 구속된 원세훈 전 원장도 취임사에선 이런 말을 했다.
그런 국정원 수장에 이번엔 정치인 매수 공작 ‘전력자’가 이름을 올렸다. 검찰 기록을 보면, 이병기 국정원장은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당 경선에서 패한 이인제 의원에게 현금 5억원을 주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유세지원을 유도하기로 ‘결정’한 ‘공범’이었다. 이 일로 약식기소가 됐고,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취소함으로써 유죄가 확정됐다.
약점을 의식한 그는 인사청문회 초반 “가슴 깊이 후회한다”며 자세를 낮췄다. 대부분 언론은 이 대목만 도드라지게 썼다. 그런데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이내 엉뚱한 항변으로 사과를 뒤집었다. “정치공작이라는 말씀을 하시지만 으레 무슨 대선 앞두고는 당끼리 합치기도 하고 또 반대 당에 있던 사람도 영입도 하고 이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선 앞두고 다 그런 짓들 하지 않습니까?”
이런 막말에도 무능과 배포를 곧잘 혼동하는 야당 덕택에 그는 청문회 허들을 거저 넘었다.
지난해 정국을 뒤흔든 ‘대화록 정치’ 이후에도 국정원은 무사하다. 국정원 관련법 일부에 자구 수정이 가해졌을 뿐 내곡동은 여전히 치외법권 지대다. 범죄 혐의로 직원을 수사하려면 원장에게 “지체 없이” 알려야 하고, 전·현 직원들의 증언이나 진술을 듣는 데도 무려 보름 전 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피의사실’ 등을 미리 알려주도록 한 이 조항들에 기대어 국정원은 댓글, 간첩 증거조작 수사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1963년 ‘아버지 박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직원법에 들어간 전근대적 특권이 질기게 살아남아 지금도 국정원을 성역화하고 있는 것이다.
포드는 대통령이 되기 전 10년 동안이나 미 하원 시아이에이 특별위원회에서 일했다. 그런 그도 키신저가 내민 보고서를 읽기 전까지는 “국내 사찰이니 정신 통제니 혹은 암살 시도니 하는 따위의 이런 비밀들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팀 와이너, <잿더미의 유산>)
우리는 국정원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강희철 사회부장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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