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 작가 중 한 사람인 밀란 쿤데라(85)가 지난해 발표한 소설 <무의미의 축제>가 최근 번역돼 나왔다. 번역본으로 150쪽이 안 되는 짧은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네 남자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을 중심에 놓고 소소하며 산발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배꼽티와 에로티시즘의 관계에 대한 사변, 독재자 스탈린의 농담, 자신의 출생을 바라지 않았던 엄마의 처지와 심사에 관한 알랭의 추측…. 핵심 사건이나 일관된 플롯이 있다기보다는 다양한 상황과 인물들이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처럼 협주를 펼친다.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을 기억하는 독자에게라면 그 소설과의 크고 작은 유사성이 반갑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두 작품 모두 쿤데라가 좋아하는 형식인 7개 부로 이루어졌다. <…가벼움>에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가 나온다면 이 작품에는 스탈린 자신이 등장한다. 전작에서 전쟁 중에 포로가 된 스탈린 아들 이오시프는 변소를 더럽게 사용한다며 비난하는 동료 포로의 모욕에 격분한 나머지 전기 철조망에 몸을 던져 죽었다. <무의미…>에는 전립선 비대증에 걸려 수시로 오줌을 눠야 하는 스탈린 참모 칼리닌이 끔찍한 요의를 참고 억누르며 스탈린의 연설을 듣다가 바지를 적신 일화가 소개된다. “똥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이오시프의 죽음이 “전쟁의 광범위한 바보짓 중 유일한 형이상학적 죽음”으로 평가되는 것과 비슷하게, 요의를 상대로 한 칼리닌의 투쟁은 “인간적인 영웅적 행위”로 추어올려진다.
형이상과 형이하, 고상한 것과 비루한 것의 위계를 뒤집는 이런 태도는 쿤데라 문학의 일관된 주제와도 통한다. <…가벼움>에서 강조했던 삶의 일회성과 우연성은 <무의미…>의 주제인 무의미로 이어진다. ‘가벼움’이 ‘축제’의 들뜬 분위기를 떠오르게 한다고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의미의 축제’는 사실상 같은 말의 되풀이인 셈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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