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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가해자 쉴드 치냐’고 질문한 독자들께

등록 2014-08-08 20:03수정 2014-08-08 20:55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셨어요. 다시 인사드리게 돼 반갑습니다. 지난 3월까지 2년4개월 동안 토요판에서 기사 썼던 최우리 기자입니다. 지금은 사회부 24시팀 소속입니다. 올해는 참혹한 일이 많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봄을 잃었고, 총기난사 사건과 군 가혹행위로 여름이 지워졌습니다. 독자 모두 마음 깊숙이 분노가 가득하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5일 1200여쪽에 달하는 윤 일병 사망사건을 수사한 군 검찰의 수사기록을 보고 기사를 썼습니다. 가해자들이 군 입대 전에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가졌는지, 군 생활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폭력의 일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결국 윤 일병을 숨지게 한 과정이 뭔지 등을 분석했습니다. ‘원래부터 악마는 아니었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사였습니다. 첫 문장 때문인지, 보도 뒤 지인과 독자로부터 많은 의견을 전해들었습니다. 5명의 독자가 ‘가해자 쉴드 치냐’는 항의 메일을 보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만큼 피해자 윤 일병의 고통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항의 메일에 대한 늦은 답을, 이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수사기록을 다시 말씀드릴게요. 가해자들은 3월 초부터 윤 일병이 숨지기 전날인 4월6일까지 함께 모여 때리고 또 각자 혼자서도 때립니다. 전신을 때리지요. 의무반 소속 병사인데 생명을 함부로 다룹니다. 윤 일병이 힘들어하자 수액을 주고 때립니다. “꾀병 부리지 말라”며 물을 먹이고 또 때립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윤 일병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다 “응급환자”라며 병원으로 갑니다. 윤 일병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가해 병사들은 범행 은폐를 모의하죠. 폭행 목격자에게 “넌 자고 있었던 거다”라고 말하며 침묵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목격자는 “알았다”고 답했고, 그 이유에 대해 “남 일에 신경쓰기 싫었다. 복무 부적응이라 선임에게 혼나는 줄만 알았다”고 훗날 말합니다. 또 다른 가해자 하 병장이 윤 일병이 폭행 사실을 적어두었을까봐 그의 수첩을 찾아 찢기까지 합니다. 그들의 ‘악마’적 행위는 시민단체의 폭로로 거의 밝혀졌습니다.

<한겨레>는 악마의 탈을 쓴 가해자들의 민낯이 궁금했습니다. ‘왜’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주범 이 병장의 병영생활기록부와 복무적합도 검사 기록을 보니 부대를 옮긴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유는 선임병의 폭언, 동료들과의 불화였습니다. 당시 소원수리를 했던 이 병장은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을 당하는 걸 못 견뎌 했습니다. 부대를 옮기고 한 달 뒤 받은 검사에서 그의 폭력성에 대한 평가가 있습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공격적 성향을 보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잠재적 위험성’이 있는 사람의 과거는 어땠을까 궁금했습니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이 병장의 입대 당시 복무적합도 검사는 ‘양호’였습니다. 학창 시절에 싸움을 몇번 했지만, 군은 입대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고 이 병장도 남들처럼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부당한 폭력을 당해봤으므로 내무반을 바꿀 힘을 가진 뒤 내무반 문화를 바꿨으면 좋았을 텐데, 이 병장은 오히려 옛 폭력 문화를 이용했습니다. 관리자의 묵인 아래 나머지 가해 병사들도 이 병장이 만든 폭력의 구조에 갇혔습니다.

7일 국방부가 가해자들에 대해 ‘상해치사’가 아니라 ‘살인’으로 바꿔 기소할 방침이라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고의성이 있었는지 재판 과정에서 따져볼 법적 쟁점이 남았지만, 국민의 재판은 이미 끝난 분위기입니다. 가해 병사들도 지금쯤은 알고 있을까요? 자신의 무절제했던 폭력과 비겁함을요.

“군대 시스템이 폐쇄적이라도 모두가 후임을 때리지는 않는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도 끝까지 인간의 품위를 지킨 사람이 있지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닌 가해 병사들을 옹호할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다른 언론이 말하지 않는 문제를 짚고 싶었습니다. 군은 폭력의 전이가 쉬운 폐쇄적인 조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에게만 폭력의 사슬을 극복하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가해자를 그저 악마화하는 태도는 군대 폭력 문제를 오히려 손쉽게 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22사단 총기난사 사고 병사)’이라는 안타까운 유행어만큼 입에 담기 무거운 말이 있을까요. 군대와 군대를 닮은 사회에 대안을 찾자고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같이 답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최우리 사회부 24시팀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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