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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카메라

등록 2014-08-11 18:44

옛사람들 대다수는 태어난 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고 행동반경도 넓지 않았다. 지구의 면적은 예와 지금이 다르지 않으나, 옛사람들이 직접 볼 수 있는 세계는 아주 좁았다. 그들이 자기 동네 밖의 세상 형편을 아는 길은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밖에 없었다. 그들은 세상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눈이 아니라 귀로 입수했으니, 소문(所聞)이 곧 팩트였고 소견(所見)은 해석의 준거였을 뿐이다. 영단어 뉴스를 신문(新聞), 즉 ‘새로 들은 이야기’라 번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카메라는 정보 입수의 주된 통로를 귀에서 눈으로 전환시켰다. 사진은 시간을 정지시켜 피사체의 형상에 영속성을 부여하고, 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카메라가 순간적으로 포착한 장면은 촬영자가 확실히 본 바로서, 의심할 나위 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진실을 묘사한 것’이라는 뜻의 사진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그때까지 사실상 유일한 정보원이었던 소문은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사진 인쇄술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 주었다.

한국인, 또는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이 최초로 사진기에 담긴 것은 1871년 신미양요 때이다. 그 탓에 사진으로 모습을 남긴 최초의 한국인은 포로와 시체들이었다. 1882년에는 후일 로웰 천문대를 세운 퍼시벌 로웰이 조선에 와 고종의 사진을 찍었으며, 1883년에는 황철이 서울에 촬영국이라는 사진관을 냈다. 1910년대부터는 신문에 사진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후 사진은 기억을 저장하고 진실을 기록하는 매체로서 그 영향력을 계속 키워왔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개인용 통신기에 부착된 카메라로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찍어 타인과 공유한다. 하지만 사진의 진실성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역이용하는 술법도 더불어 발달했으니, 전후 맥락과 괴리된 찰나적 현상에 기만당할 위험성도 훨씬 커졌다. 사진에 담기는 것은 현상일 뿐 진실은 아니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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