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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금통위원들은 왜 임금에 무관심할까 / 이경

등록 2014-08-12 18:39

이경 논설위원
이경 논설위원
두 해 전 8월24일치 <연합뉴스>에 한국은행에 관한 자그만 기사가 실렸다. 김중수 당시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6주 뒤에서 2주 뒤로 앞당겨 공개하기로 한 데 대해 시장이 ‘무반응’이어서 서운함(?)을 나타냈다는 내용이다. 김 총재는 ‘투자은행 전문가와의 간담회’에서 “지난달 기준금리 결정 때 발표한 의사록 공개 시기 단축이 큰 관심을 받을 줄 알았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운함 또는 아쉬움을 에둘러 표한 것이다. 그러고는 “여러분의 침묵은 동의란 것을 알았다”는 말로 웃음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금통위 의사록의 위상을 뭉뚱그려 보여주는 삽화다. 매달 공개되지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등의 경우와 대비가 된다. 여기에는 시장과 언론의 게으름 탓도 있겠지만 금통위 의사록 자체에 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 의사록은 한은의 정책결정기구인 금통위 회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통화정책과 관련한 최고위 기구의 논의를 담고 있어서 중요한 문서다. 하지만 읽어봐도 통화정책 방향이나 경제 동향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비슷한 발언이 전문용어로 포장된 채 지루하게 이어져 찬밥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유익한 내용도 꽤 있다. 금통위원들의 ‘수준 높은’ 논의에 때로 주눅이 들면서 새 경제지식과 안목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의사록을 보면 의아한 게 있다. 금통위원들이 임금 동향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은의 주된 설립목적이 물가안정이고, 물가와 임금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임금이 오르면 가계소득이 늘어나고, 이는 총수요를 진작해 물가를 높일 수 있다. 공급면에서 보면 임금 증가는 단위노동비용(제품 1개를 만드는 데 드는 인건비)을 늘려 역시 물가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물가가 오르면 노동자들은 걸맞은 임금 상승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금통위원들이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웬일인지 임금이나 단위노동비용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기준금리 조정 여부를 다룬 금통위 의사록 가운데 올해치만 살펴보자. 이주열 현 총재가 취임한 4월 이후 7월까지의 넉달치 의사록에는 ‘임금’(합성어 포함)이란 말이 모두 5차례 나오고 ‘단위노동비용’이란 말은 아예 없다. 임금은 6월치에 3차례, 4월치에 2차례 등장한다. 이런 언급조차 “고용시장은 개선되는 추세이지만 서비스업, 50대 이상 장년층을 중심으로 취업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동 부문의 임금도 상대적으로 낮아 고용 확대가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로 원활히 연계되지 못하고 있음” 따위로, 지나가면서 한마디 걸치는 식이다. 반면 ‘물가’는 무려 286차례나 나온다.

이는 김 전 총재 시절인 1~3월에도 마찬가지였다. 물가가 145차례 거론됐으나 임금은 6차례에 그쳤다. 단위노동비용은 역시 전무했다. 금통위원들이 물가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물가상승률이 계속 낮아 한은의 중기 물가안정목표(한 해 상승률 2.5~3.5%)를 밑돌고 있으니 더 그렇다. 금통위원들로서는 목표를 이루지 못해 조바심이 날 법하다. 그럼에도 물가와 연관성이 높은 임금에 무관심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이런 편향된 인식에서는 제대로 된 물가동향 분석과 통화정책 대응이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재닛 옐런 미국 연준 의장이 임금동향에 관심을 기울이고, 독일 중앙은행인 연방은행이 3%라는 ‘높은’ 수치까지 제시하며 이례적으로 임금인상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남의 나라 일일 뿐인가.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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