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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세월이 가면 / 최재봉

등록 2014-08-26 18:34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가을이면 특히 사무치는 노래 <세월이 가면>의 일부다. 대중적 호소력과 시적 운치를 겸비한 이 노랫말은 <목마와 숙녀>의 멋쟁이 시인 박인환(1926~1956)의 작품이다. 죽기 얼마 전 그가 명동 술집에서 한달음에 시를 쓰고 그의 친구였던 언론인 이진섭이 역시 즉석에서 곡을 붙여 술자리의 일행들과 함께 불렀다는 일화가 제법 널리 알려져 있다. 전후 폐허의 서울 명동을 낭만적 애수로 촉촉이 물들인 이 ‘신화’는 그러나 사뭇 과장된 것이다.

<근대서지> 2014년 상반기호(통권9호)에 기고한 ‘<세월이 가면>의 증언 자료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염철 경북대 초빙교수는 이 노래의 탄생담을 담은 증언 셋을 비교한다. 언론인 송지영이 <주간희망> 1956년 3월12일치에 쓴 ‘명동의 ‘샹송’’이라는 글과 같은 잡지 1956년 4월3일치에 실린 작자 미상의 글 ‘세월이 가면, 명동 ‘샹송’이 되기까지’, 그리고 <아리랑> 2-6호(1956년 6월1일 발행)의 편집 후기가 그것이다. 송지영의 증언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신화’와 일치하지만, 나머지 두 글이 알려주는 정황이 진실에 더 가깝다고 염 교수는 주장한다. 박인환과 이진섭이 어느 날 “명동을 후줄근히 적실” 샹송풍 노래 하나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한 뒤 인환이 바로 다음날 시를 써 오자 그로부터 열흘 뒤에 이진섭이 곡을 완성했다는 것. 유성호 한양대 교수 등의 선행 연구를 참조한 결론이다. <세월이 가면>이 천재적 예술가들의 즉흥 작업에서 빚어졌다는 아름다운 신화는 비록 탈색되었지만, 노래 자체의 매력도 덩달아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닐 테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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