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논설위원
“새정치민주연합은 세 번 변했다. 6·4 지방선거 때는 우리랑 거리를 뒀고, 7·30 재보선 때는 와락 달려들었으며, 8월에는 우리를 버렸다.” 어느 세월호 유족이 요즘 느끼는 감정이다.
6월 지방선거 때 새정치연합은 조심스러워했다. 세월호를 이용한다는 인상을 풍겼다가는 바로 역풍이 불 거라고 봤다. 당시 한 재선의원은 “지금은 두더지잡기 게임이다. 머리를 내미는 순간 방망이를 맞게 돼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그런 냉정함이 서운했다. “당 대표를 만나러 갔는데 선거사무소 개소식이 있다고 나가버리더군요. 세월호 문제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7월 재보선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당의 전략도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공천 실패로 지도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야당은 ‘세월호 심판론’에 매달렸다. 모든 게 박근혜 대통령 책임이었다. 다른 쟁점은 없었다. “세월호가 없었다면 뭘로 선거를 치르려고 했을까 씁쓸하더군요. 그래도 선거에서 이기면 특별법이 통과될 거라 기대했죠.”
8월 들어 야당의 태도는 또 바뀌었다. 새누리당과 합의를 보면서 유족들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그토록 간곡하게 부탁했던 수사·기소권은 아예 협상 탁자에 올리지도 않았다. 유족들은 한참 떠받들어지다가 내팽개쳐진 꼴이었다. 결국 “새정치연합이 유가족을 이용한 것”이라는 나와서는 안 될 불만까지 제기됐다.
당이 좌우 편향을 왕복하는 동안 선거에 지고 지지도는 땅에 떨어졌다. 세월호를 지나치게 내세우니 산토끼들이 다가오지 않았고, 세월호를 얼른 털어버리려 하니 집토끼가 달아났다. 어느 의원은 열흘 전 단식에 동참하려고 광화문을 찾았다가 유족들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다. ‘단식은 힘없는 우리들이나 할 테니, 국회의원은 싸우기나 잘하세요’라는 비아냥이었다. 이 의원은 “창피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털어놨다.
당만 망가진 게 아니다. 세월호는 더 엉망이 돼버렸다. 어린아이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걸 온 국민이 두 눈 번연히 뜨고 지켜본 사건이다. 모두들 펑펑 울었고, 모두들 바꾸자고 다짐했다. 진보 보수로 나눌 일도, 여야로 갈릴 사안도 아니다. 그런데 6·25 이후 최대 비극이라던 세월호 참사가 시시껍적한 여야 다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보면, 지난 대선 때 투표 성향과 거의 일치한다. 진도 앞바다에 빠졌던 세월호가 다시 한번 진영 논리의 수렁에 함몰됐다.
물론 청와대의 비겁함이 근본 원인이다. 자신에게 쏟아질 책임과 비판을 회피하려 분탕질을 친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를 대하는 야당의 얄팍함도 분명 한몫 거들고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니, 지켜보는 국민도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세월호를 진영 대결의 바다에서 건져내려면 새정치연합의 ‘참회’가 우선돼야 한다. 의원 130명이 광화문광장에 나가 무릎을 꿇든,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싸워서 뭘 얻으려 하기보다는 유족과 국민으로부터 자그마한 신뢰라도 쌓는 게 더 중요하다. 반성이 빠진 채 ‘투쟁’을 외쳐대니 공허하다. 당의 내우를 외환으로 극복하려는 술수로 비친다. 세월호 특별법은 야당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 ‘6월항쟁’ 같은 열기가 있어야 한다. 광화문이 ‘명동성당’이 돼야 한다. 그런데 이래서는 아무런 감동이 없다.
가라앉는 건 세월호만이 아니다. 새정치연합도 가라앉고 있다. 세월호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선실 안에 있었다지만, 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탄 배가 침몰하는 것조차 모르는 모양이다. 도대체 민심의 갑판 위로 올라오질 않고 있다. 비극이다.
김의겸 논설위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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