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논설위원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의학자 빅토어 에밀 프랑클은 1944년 10월 기차에 실렸다. 기차는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려 새벽에 종착역에 도착했다. 아우슈비츠였다. 함께 끌려온 사람 1500명 중 90%가 도착 당일 가스실을 거쳐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졌다. 프랑클의 아버지·어머니·형, 그리고 아내는 모두 가스실로 직행하거나 중노동에 시달리다 죽었다. 살아남은 프랑클은 수용소 체험을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한 인간이 겪은 생지옥에 대한 기록이자 그 지옥도 죽이지 못한 고귀한 인간성에 대한 증언이다.
프랑클이 만난 아우슈비츠는 사람의 목숨이 쓰레기처럼 소각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벌레처럼 짓밟히는 곳이었다. 수용소에 도착한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압수당했다. 머리털까지 깎였다. 프랑클은 수용소에 들어갈 때까지도 원고 뭉치를 옷 속에 품고 있었다. 원고를 지키고 싶었던 프랑클은 감시인에게 “일생 동안 연구한 모든 것이 여기에 들어 있다”고 호소했다. 돌아온 것은 비웃음과 욕설뿐이었다. 프랑클의 체험이 담긴 그 책을 읽으며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 나라를 생각한다. 세월호에 자식을 묻은 부모들에게 이 나라는 아우슈비츠와 얼마나 다를까. 진실을 알려 달라는 애절한 호소에 비웃음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는다. 사람을 죽이는 독가스 같은 말들이 쏟아진다.
수용소 사람들이 강제노역의 대가로 받은 음식은 하루 한 끼 멀건 국과 빵이 전부였다. 수용소 생활은 탈진과 죽음으로 가는 긴 행진이었다. 사람들의 몸은 해골에 가죽을 씌워놓은 것같이 말라갔다. 피하지방이 소진되고 근육이 사라지고 굶주림 끝에 내장 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빨아들였다. 프랑클의 증언 위로 40일이 넘도록 단식을 하다가 쓰러진 김영오씨의 말라붙은 몸이 겹친다. 수용소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극심한 그리움에 시달렸다는데, 김영오씨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딸을 잊을 수 없었다. 내 아이가 죽은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 목숨을 건 단식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아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온갖 핑계를 붙여 진실로 가는 길을 틀어막는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초인적인 의지로 시련에 맞서 의미를 찾아내기도 했다고 프랑클은 말한다. “사람은 운명의 시련을 받아들여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간다. 그 과정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삶에 더 깊은 의미를 준다.” 김영오씨처럼 아이를 잃은 이호진씨가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걸으며 등에 졌던 것이 바로 그 십자가일 것이다. 그러나 프랑클의 증언을 보면, 수용소를 지배한 것은 그런 인간다움을 잡아먹는 동물적 본능이었다.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일까.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도 사람인 이상 죄의식을 느낄 것이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죄의식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그 죄의식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고 한다는 데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비웃고 욕하는 정치인·언론인·지식인들이 보여주는 것이 이런 모습이다. 죄의식에 쫓겨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몰골들이 자식 잃은 사람들을 저주한다. 프랑클은 이렇게 썼다. “나는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돼지가 우글거리는 나라에서 우리는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가. 프랑클은 니체의 말로 우리를 격려한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세월호 가족과 진실을 알려는 국민에게 힘을 주는 말이다.
고명섭 논설위원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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