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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군대에는 대화가 존재하는가 / 조원광

등록 2014-08-31 18:48

조원광 수유너머N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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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장교로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계급이 마치 신분처럼 모든 일상을 지배한다는 점이었다. 본디 계급은 전투에서의 효율을 위한 체계일 텐데, 그것은 업무에 머물지 않고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했다. 계급이 높은 군인은 업무상 공식적 권한을 가지는 것에 더해, 업무 외의 영역에서도 우월한 존재로 여겨졌다. 사석에서 상관들의 개똥철학을 마치 심오한 삶의 진리인 양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야 했던 경험이나, ‘아닙니다!’ 따위를 연발하며 사적인 일까지 처리해줘야 했던 일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군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하 계급 간에 진솔한 대화는 놀라울 정도로 드물다. 물론 서로 말은 하지만, 하급자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상급자보다 부족한 존재라 간주되는 상황이니 당연하다. 의사소통은 주로 상급자가 말을 하면 하급자는 동의와 지지를 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군대에서 지휘관 효과가 아주 큰 것은, 그러니까 훌륭한 지휘관이 부임하면 부대가 여러모로 좋아지지만 이상한 사람이 오면 정말 ‘뻘짓’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불필요한 일들이 생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계적 의사결정이 필요한 군사작전은 논외로 하더라도, 부대 관리나 일상생활 등 대화나 토론을 통해 좋은 방안을 찾아야 할 영역도 참으로 많은데, 누구도 상급자나 지휘관이 내린 결정에 토를 달지 않는다. 그래서 심지어 이상한 지휘관은 본인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누구도 당신이 하는 일이 ‘뻘짓’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른 부대로 가서 비슷한 일을 벌인다. 폭탄 돌리기다.

최근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보자면, 원인은 물론 대응에서도 군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과 이를 통한 정당한 견제가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아 참 슬프다. 초급 간부의 방조 아래 발생한 이 끔찍한 사건은, 현재 군에는 악랄한 상급자를 제어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건 이후에는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지휘계통상의 간부들이 물러나고 전 장병 대상 인권 교육이 실시됐다. 과감해 보이지만, 책임자 처벌과 하달식 정신교육이라는 너무나 익숙한 방식의 대응이다. 책임도 책임이지만 여러 시각을 동원해 문제의 원인을 면밀히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시도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대응은 지휘관에게 전권을 부여하고 문제 발생 시 모든 책임을 지게 만드는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반영한다. 책임자만 계속 바뀔 뿐, 문제 파악과 해결을 위한 수평적 토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범적용 확대설이 나오고 있는 ‘동기생 분/소대’ 구성도 그렇다. 병력 동시 제대에 따른 정예 전력 공백 등 일선 지휘관이 염려할 법한 문제가 적지 않음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대책 없이 신임 참모총장의 관련 발언이 언론을 타는 모습을 보면, 총장과 기타 장병 사이에서 문제 해결 방향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염려스럽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국민은 군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군대가 애쓰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변화는 하던 방식대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용기 내어 시도하는 것에서 온다. 나는 계급 간에 의사소통과 토론을 촉발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고안하는 것이 그런 용기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조원광 수유너머N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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