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6·4 지방선거에서 핵발전소 정책을 뒤흔들 큰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 있다. 바로 삼척이다. 시민들이 ‘핵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약속한 김양호 후보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시킨 것이다. 김 시장은 ‘핵발전 유치 신청 철회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추진했고, 시의회도 통과했다. 그런데 산업통상자원부가 제동을 걸었다. 핵발전소 건설은 국가사무로서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한국의 전력정책은 수출과 산업 성장을 위해 대형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공급하는 중앙집중식이다. 산업부가 에너지정책에 관한 계획과 실행, 법과 예산을 독점하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반면 지자체는 에너지 전담 부서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업무도 주유소 허가나 재생가능에너지 설치에 국한돼 있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끊임없는 핵발전 비리, 밀양·청도 송전탑 갈등 등을 통해 에너지정책 전환과 분권을 요구하는 시민과 지자체가 늘고 있다. 계획은 중앙에서 세우고, 위험과 고통은 지역에서 떠안는 방식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삼척에 핵발전소가 건설되면 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765㎸ 초고압 송전망도 들어선다. 이에 시민들은 ‘삼척시민 96.9%가 핵발전 유치를 찬성한다’고 하던 김대수 시장을 선거를 통해 심판한 것이다. 그런데 산업부는 핵발전소 유치 신청권은 인정하고, 철회권은 인정하지 않겠단다. 유치 신청은 지방자치단체 사무이고, 유치 신청 철회는 국가사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논리다. 핵발전소 건설은 삼척시민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산업부가 주민투표를 거부하는 것은 지자체와 주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부산시민들은 고리 1호기가 걱정이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고리 1호기 수명 연장에 반대하지만 시장이 폐쇄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 고리에서 사고가 나면 부산과 울산 지역 반경 30㎞ 이내 320만 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데, 지역의 목소리가 반영될 제도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1호기 수명 연장을 위한 예비 안전성 평가 용역을 시행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0일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의 2단계 계획을 발표하고, 현재 4.3%인 서울의 전력자립도를 2020년까지 2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지역의 핵발전이나 송전탑에 덜 의존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서울에서는 에너지 200만 티오이(TOE·석유환산톤)를 줄이고, 전력·가스·석유의 소비량을 1년 전에 견줘 모두 줄였다. 서울시의 수요관리 성과는 핵발전소 증설과 수출산업화 정책에 집중하는 박근혜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 노원구가 주도해 결성한 ‘탈핵에너지전환 도시선언’도 2기를 준비하고 있다. 1기에는 기초지자체장 46명이 참여했다. 이처럼 지자체가 제대로 된 지역 에너지정책을 펼치려면 산업부가 독점하고 있는 권한과 예산을 나눠야 한다.
2014년 하반기 한국의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험할 기회의 창이 열린다. 산업부가 세우고 있는 7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삼척·영덕 핵발전소 건설과 고리 1호기 폐쇄 여부가 반영될 예정이다. 삼척시는 선관위가 주민투표 시행을 거부해도, 독립기구를 구성해 10월 ‘자체 주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안전하고 정의로운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삼척 핵발전소 건설을 백지화하고, 고리 1호기를 즉각 폐쇄해야 한다. 이 일은 비단 삼척과 부산 시민들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고, 행동해 에너지 분권과 자치 시대를 함께 열어야 한다.
이유진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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