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논설위원
막히면 뚫는 게 정치다. 맺히면 푸는 게 정치 본연의 역할이다. 세상사 막힘도 맺힘도 없다면 정치도 무용할 것이다. 의견이 부딪히고 이해가 엇갈릴 때 정치의 필요성은 한층 절실해진다. 옳으니 그르니 다투며 삿대질이 오갈 때 정치는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한가위가 목전인데 정국은 꽉꽉 막혀 있다. ‘정치마비의 계절’, 갑갑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정치가 ‘뚫어뻥’의 진면목을 드러낼 절호의 시기가 온 것이다.
꿈이 큰 정치인들이 ‘세월호 정국 뚫기’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박영선이 행렬의 선두에 섰다. 두 차례 발표한 박영선-이완구 합의문엔 고개를 끄덕일 만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정치에서 절차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유족의 동의를 얻지 못한 ‘전격 합의’는 ‘덜컥 합의’가 되고 말았다. 박영선이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은 조급함이 부른 오판이었다. 기회는 위기를 동반한다. 박영선이 입은 내상은 크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뛰어들었다. 정의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력으로 의장에 당선된 사람이다. 대선을 꿈꾼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서겠다고 하자마자 여당의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단칼에 거부했다. 물정 모르는 국회의장이 끼어들어 분란만 부추긴다는 투였다. 아무리 ‘친박 핵심’이라지만 중급 당직자가 국회 수장에게 면박을 주며 대거리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싸가지 없음’이 진보 쪽 전매특허는 아닌 셈이다.
이완구도 나섰다. 도지사직까지 내던지며 ‘용꿈’을 꿔온 사람이다. 유족과 마주앉은 것까지는 좋았다. 1, 2차 면담에선 타결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3차 만남을 고비로 갑자기 안면을 싹 바꿨다. 주호영과 김재원이 이완구의 호위무사로 나섰는데 3인의 진용엔 절묘한 구석이 있다. 이완구는 경찰, 주호영은 판사, 김재원은 검사 출신이다. 사람을 으르고 달래고 구슬리는 데 이보다 더 효율적인 직업군 조합은 찾기 어려울 거다. 3차 만남에서 3인조는 유족을 압박했다. 막힌 곳을 뚫기보다 뚫리지 않도록 기를 쓰고 막으려는 것처럼 비쳤다. 짐작하건대 청와대와 조율하는 과정에서 기조가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청와대가 왜? 특별법에 워낙 강경하기도 하지만 세월호 정국에 종지부를 찍는 주인공이 정의화나 이완구가 되는 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가정이 입증되려면 박 대통령이 조만간 유족과 대면하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을 매우 꺼리는 것으로 알려진 박 대통령이 세월호 정국 해결의 주역이 되는 흥미진진 반전 드라마가 써지는 셈인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그냥 협의해주고 싶다. 1년, 2년 지나면 사람들이 ‘이완구법’이라고 부를 거 아니냐. 미래세대를 보고 원칙을 지키며 협상할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서는 이완구의 이 얘기, 믿어주고 싶다. 그런데 “왜 자꾸 김기춘 실장만 건드리느냐”며 ‘김장수 책임론과 김기춘 면책론’을 자꾸 설파하니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미래세대가 아니라 청와대를 보고 협상한다는 얘기다.
요즘 유행하는 실명법엔 ‘김영란법’처럼 명예로운 것도 있지만 ‘유병언법’ ‘전두환법’ ‘조두순법’처럼 오명을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그러니 이완구의 바람대로 세월호 특별법을 ‘이완구법’이라고 불러주는 건 어떤가. 이완구가 세월호 사건에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세월호의 흔적 속에 명예를 남길지 오명을 새길지는 그의 선택이다. 그런 차원에서 ‘박근혜법’이라고 부르는 것도 괜찮겠다.
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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