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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영란은행 / 강재형

등록 2014-09-14 18:56

야트막한 언덕 위 시계탑 건물의 강의실. 학창시절에 전공과목을 듣던 곳이다. 영시를 강의하던 교수는 ‘애란’ 얘기를 할 때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예이츠를 배울 때였을 것이다.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을 읽을 때도 ‘애란’은 빠지지 않았고, <고도를 기다리며> 강독 시간에도 그러했다. 제임스 조이스, 사뮈엘 베케트의 고향이 ‘애란’이기 때문이다. 영어 ‘아일랜드’, 게일어 ‘에이레’보다 한자 음역어 ‘애란’(愛蘭)이라 부르는 게 왠지 그 나라 정서에 어울리는 것 같았던 시절의 일이다.

불란서(프랑스), 이태리(이탈리아), 서반아(스페인), 희랍(그리스), 화란(네덜란드), 파란(폴란드), 서전(스웨덴), 오지리(오스트리아), 애급(이집트), 아라사(러시아), 토이기(터키) 따위는 널리 쓰인 한자 음역어이다. 앞 글자를 딴 ‘불’(佛, 프랑스), ‘화’(和, 네덜란드), ‘인니’(印尼, 인도네시아), ‘마’(馬, 말레이시아) 같은 표현도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미국, 독일, 호주, 태국, 인도 그리고 영국은 여전히 음역어로 통하는 나라이다.

영국의 정식 명칭은 ‘대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를 통틀어 이르는 ‘브리튼’과 아일랜드 섬 북쪽 일부 지역으로 이루어진 이 나라는 ‘유케이’(UK), ‘지비’(GB)로 줄여 표기하기도 한다. 영국(英國)은 ‘잉글랜드’의 음역어 ‘영란’(英蘭)에서 온 말이다. ‘뱅크 오브 잉글랜드’(BOE, Bank of England)를 ‘영란은행’으로 번역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에 즈음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는 ‘BOE’를 ‘영란은행’, ‘영국은행’, ‘영국중앙은행’으로 달리 이른다. ‘한 은행, 다른 이름’? 하나로 정한다면 ‘영국(중앙)은행’이 어떨까 싶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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