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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동상

등록 2014-09-15 18:32


모든 생명체는 매 순간 조금씩 변한다.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생명체가 아니다. 물론 무기물도 변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더뎌서 영원불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류는 신(神)에게 유기체와 무기물의 속성을 아울러 부여했다. 신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생명체이면서도 무기물처럼 영생불사하는 존재였다. 신을 경배하고 닮으려는 인류의 열망은 마침내 형상은 사람이나 변하지 않는 실체를 창조해냈다.

석상이나 동상 등의 조상(彫像)은 신의 속성을 지닌 신물(神物)이었다. 신상에 경배하며 소원을 비는 것은 보편적 종교 의례였다. 사람의 동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부터인데, 신에 버금가는 존재로 인정받은 초월적 권력자들만이 동상으로 재탄생하여 불로장생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근대 이전에 동상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사람은 고려 태조 왕건뿐이다.

국민국가 시대가 열리면서 전세계에서 민족 영웅들이 새로 신격(神格)을 얻었다. 죽은 뒤 동상으로 재탄생한 민족 영웅들은 민족적 숭배의 대상이자 ‘민족정신’을 가르치는 스승이었고, 그들이 서 있는 자리는 새로운 성소(聖所)가 되었다.

이 땅에 동상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말부터였는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동상들 중 한국인의 것은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 중 포탄 재료로 사용되었고, 일본인의 것은 해방 직후 모두 파괴되었다. 민족 영웅의 동상이 당당히 공공장소에 우뚝 선 것은 정부 수립 후 10년 가까이 지나서였다. 이승만 동상은 당대 세계 최대라는 점에서뿐 아니라 산 사람을 늙지 않는 존재로 만들어 신격화했다는 점에서도 특이한 존재였다. 1966년에 설립된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는 국민 교육을 목적으로 15좌의 동상을 만들어 서울 곳곳에 세웠다.

현대인들은 도시를 거닐며 신격화한 민족 영웅들을 만나고 그들의 가르침을 내면화한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세종대왕과 충무공 동상 앞에서 ‘진상규명’이라는 소원을 빌며 50일 가까이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종과 충무공의 불멸의 영혼은 그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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