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길리국(英吉利國), 애란국(愛蘭國), 사객란국(斯客蘭國)이 합쳐져 한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에 대영국(大英國)이라고 부르고, 국왕의 성은 위씨(威氏)이며….”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와 윌리엄 4세를 한자로 옮긴 이름이 그럴듯하다. 순조32년(서기 1832년) 7월21일치 <조선왕조실록>의 한 대목이다. 기록이 있던 날 이후 180여년이 흐른 오늘, ‘대영국’은 변함없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 결과 ‘독립안 부결’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영란’(英蘭)은 ‘잉글랜드’를 음역한 것이라 하면서 ‘미국, 독일, 호주, 태국은 여전히 음역어로 통하는 나라’라 했다. 그랬더니 “미국도?”, “다른 나라는 그럴듯한데 ‘미국’은 어떤 이름을 옮긴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美國’과 ‘米國’으로 달리 표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묻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미국’을 뜻하는 한자이름은 크게 둘로 나뉜다. ‘아묵리가’(亞墨利加), ‘아미리가’(亞美里加)처럼 ‘아메리카’와 비슷한 게 있고, ‘미리가’(美理哥), ‘미리견’(美利堅·彌利堅·米利堅)처럼 원이름이 알쏭한 것이다. ‘America’의 발음이 첫음절 ‘어’는 약하게, 악센트가 있는 둘째 음절 ‘메’는 강하게 들리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美國’, 일본은 ‘米國’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옛 신문을 훑어보면 ‘美國’과 ‘米國’이 외국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종 때부터 순조 즉위년(1907년)까지는 ‘美國’이다가 1908년부터 ‘米-’로 기록된다. 일제강점기 ‘米國’은 광복 후 미 군정기를 거치면서 다시 ‘美國’이 된다. ‘美國’은 ‘아름다운 나라’이고 ‘米國’은 ‘쌀이 많이 나는 나라’라는 이야기는 제 나름의 생각을 담아 갖다 붙인 것이다. ‘아세아’(亞細亞)와 같이 음역은 ‘한자를 가지고 외국어 음을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강재형 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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