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최원식 인하대 교수의 비평집 <소수자의 옹호>에는 ‘제9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을 사양하며’라는 글이 들어 있다. 팔봉 김기진(1903~1985)을 기려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이 상의 1998년 수상자로 선정된 그가 수상을 마다하면서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이 글에서 최 교수는 “한국 근대비평은 팔봉 선생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3·1운동 직후 울분 속에 방황하던 우리 신문학은 팔봉의 비평적 개입을 통해 문학의 사회성을 한층 자각하게 됩니다”라며 팔봉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럼에도 그가 상을 사양하기로 한 까닭은 일제 말기 팔봉의 친일 행적 때문임을 암시한다. 최 교수는 “친일문학은 가장 예민한 한국문학의 원죄 근처”라며 “폭로하고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해서” “친일문학이 본격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문학상은 대체로 좋은 취지로 제정되고 시상되며 수상자에게는 긍지와 보람을 선사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상을 거부하는 일이 이따금 일어나곤 한다. 노벨문학상의 경우에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958년)와 장 폴 사르트르(1964년)가 수상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 물론 파스테르나크는 조국 소련의 눈치를 보려 한 혐의가 있고, 사르트르는 라이벌이었던 알베르 카뮈가 자신보다 먼저 수상(1957년)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따라붙긴 한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초에 작가 최인훈이 인촌상을 거부한 것을 비롯해 황석영·고종석·공선옥 등이 동인문학상 심사 대상 거부 선언을 했던 사례가 있다. 축하와 감사의 마당이 되어야 할 문학상이 거부나 사양 등으로 얼룩지는 것은 물론 씁쓸한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수상 거부라는 삐딱한 방식이 오히려 문학상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겠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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