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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44.9%? / 이경

등록 2014-09-23 18:31

이경 논설위원
이경 논설위원
“피케티는 상대방에 대한 배 아픔의 인간정서를 부추기면서, 소수에 대한 세금 강화로 배 아픔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피케티의 경제철학이 국민들에게 호소력을 가지면, 한국의 성장신화는 우리 시대에서 멈추고 말 것이다.” <21세기의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방한하기 직전에 한국경제연구원이 연 세미나에서 나온 말이다.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의 이 발언은, 피케티에 대한 보수진영 한편의 적대적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진보진영이 이 ‘도발’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했는데, 피케티가 답을 내놓았다. “보수주의자들은 내 책에 우려할 게 아니라, 불평등 자체를 우려해야 한다. 불평등을 확대시킨 건 내가 아니다. 보수주의자들은 (불평등한 현실을) 부인만 할 게 아니라, 눈을 뜨고 직시해야 한다.”(<한겨레> 회견) 핵심을 찌른 대꾸라고 생각한다.

40대 초반의 이 프랑스 경제학자가 일으킨 바람이 심상치 않다. 그의 책과 논문, 그리고 한국의 불평등 실태를 짚어보는 모임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를 가리지 않는다. 며칠 전 내가 지켜본 한 토론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3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키며 피케티 강연과 패널 토론에 귀를 기울이고 질문을 했다. 토론이 좀 겉돌긴 했으나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그의 책도 꽤 많이 팔린다고 한다. 피케티가 불평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을 한 단계 끌어올린 셈이다. 그에게 감사할 일이다.

‘피케티 효과’는 또 있다. 그의 방법을 준용한 구체적 연구성과가 나온 것이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논문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전체 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2년 44.9%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는 불평등 국가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미국(48.2%) 수준에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5년 29.2%였던 수치가 외환위기를 거치며 크게 뛴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피케티 등이 만든 ‘세계 최고소득 자료집’(WTID)에 최근 수록됐다. 한국은 28개 등재국 가운데 네번째 불평등국으로, 일본(40.5%, 2010년), 영국(39.2%, 2011년), 프랑스(32.7%, 2009년) 등을 앞질렀다. 1위는 남아프리카공화국(54.1%, 2011년)이다. 다행히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위 10% 경우보다는 덜했다. 한국은 12.2%로 미국(19.3%)의 3분의 2 수준이다. 하지만 일본(9.5%) 등에 견주면 여전히 높다.

김 교수는 지니계수에서도 심한 불평등을 확인했다. 통계청 가계동향 자료에다 소득세 자료를 보정했더니, 시장소득 지니계수가 2010년 0.339에서 0.415로, 가처분소득 계수는 0.308에서 0.371로 높아졌다.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칠레, 멕시코, 터키, 미국에 이은 다섯번째 불평등국이 된 것이다.

충격적인 수치들이다. 우리나라는 그간 국제사회에서 성장은 물론 분배에서도 ‘성공사례’라는 평가를 적잖이 받아왔다. 이것이 깨지게 생겼다. 그런데 통계청을 비롯해 정부 당국에서는 아직 공식 반응이 없다. 세계 최고소득 자료집에 수록된 만큼 국제사회에서 ‘표준’ 통계로 활용될 가능성이 큰데도 말이다. 분배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게 될지 몰라 두려운 것일까. 학계나 연구기관도 큰 차이는 없다. 지금이라도 김 교수 연구내용이 사실에 들어맞는지 꼼꼼하게 따져봤으면 좋겠다. 맞으면 수용하고 잘못됐으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불평등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적절한 대책도 세울 수 있다. 무시가 능사는 아니다.

이경 논설위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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