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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룰 말고 게임을 바꿔라 / 임석규

등록 2014-09-25 18:49

낯익은 광경이다. 등장인물들 면면이 약간 다를 뿐 새로울 게 없다. 초장부터 전당대회 룰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면서 싹수가 노랗다고 혀를 끌끌 차는 이들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미 당권주자인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의 샅바싸움장이 되고 말았다.

노무현의 비서실장을 했던 문재인에겐 김대중이 없고, 김대중의 비서실장 출신인 박지원에겐 노무현이 없다. 정세균은 김대중의 조직적 기반인 ‘연청’ 회장을 했고 노무현 휘하에서 장관을 지냈지만 양쪽 색깔 모두 희미한 편이다. 세력이 고만고만한 세 사람은 비대위 안에서 끝없는 신경전을 펼칠 테고 비대위에 들어가지 못한 계파는 밖에서 계속 불만을 제기할 것이다.

익히 봤던 장면이 되풀이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과거와 동일한 경로로 가는데 종착지가 바뀔 리 없다. ‘선거 패배→비대위 구성→규칙 싸움→전당대회→계파 공천→선거 패배’의 악순환이다. 10년째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동일 궤도에서 무한 도전 중이다.

결과는 리더십 실종으로 나타났다. 주류가 득세하면 비주류가 흔들어대고 비주류가 세를 얻으면 이전의 주류가 가만있지 않는다. 외부에서 온 인물들도 배겨내지 못했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도 ‘계파 카르텔의 늪’에선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해낼 수 없었다. 지도자가 당의 얼굴로 나서는 족족 나가떨어져 실려나갔다. 지난 11년 동안 28명의 대표가 바뀌었으니 ‘대표의 무덤’이란 세간의 수군거림이 무색하지 않다.

문희상 비대위 체제의 앞날을 전망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역 조직을 정비하고 위원장과 대의원을 뽑아 전당대회를 순조롭게 치르는 정도로는 악순환의 늪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똑같은 게임이라면 방식을 살짝 고치고 룰을 조금 손본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입력이 변하지 않는데 출력이 다르길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야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패배의 악순환 구조를 깨뜨릴 수 있는 권위있는 리더십을 세우는 일이다. 외부 인물도 수혈되지 않고 세대교체를 이뤄낼 내부 인물군도 부족한 형편에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 그대로 가면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수밖에 없다. 방법을 두고선 당을 해산하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급진적 목소리에서부터 네트워크 정당론, 전당원 투표론 등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소한 대표를 뽑는 과정이라도 혁신하지 않으면 힘있는 리더십을 창출하기 어렵다. 룰이 아니라 게임 자체를 바꿔야 하는 거다.

야권이 ‘게임 체인지’에 성공한 전례가 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최초로 도입한 국민경선제는 단순히 경선 규칙을 바꾼 게 아니었다. 대선후보 선출권의 문호를 국민에게 개방한 획기적 기획이었고 상상력을 현실화한 과감한 실행이었다. 조세형이 이끈 ‘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대위’가 불과 몇 달 사이에 해낸 일이었다. ‘문희상 비대위’는 처음부터 ‘관리비대위’로 역할을 한정하는 듯하다. 지금 이 당에 관리할 그 무엇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문희상 비대위’나 ‘원혜영 혁신위’가 ‘조세형 특대위’가 했던 일을 못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임석규 논설위원
임석규 논설위원
새정치연합은 중증을 앓고 있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나서 그렇고 그런 방식으로 해봤자 거기서 거기다. 무난한 관리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운동장이 기울어졌다고 탓만 할 게 아니라 삽을 들고 땅을 고르든지 다른 운동장을 찾아 나서야 한다. 비대위에 비상한 위기의식이 보이지 않고 혁신위에서 과감한 실험정신을 찾기 어렵다.

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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