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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미국의 ‘악마화 외교’와 한반도 / 박현

등록 2014-09-25 19:04

박현 워싱턴 특파원
박현 워싱턴 특파원
미국 뉴욕 맨해튼 1가 유엔본부에서 보는 이스트강은 언제 봐도 평화롭다. 잔잔한 물결에 유람선이 유유히 떠다닌다. 유엔이 지향하는 평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눈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정반대다. 유엔총회를 맞아 유엔본부 인근에선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테러에 반대하는 나이지리아인들, 독재를 비판하는 이란인들을 볼 수 있다.

기조연설에 나선 각국 정상들은 너도나도 평화를 외쳤다. 그러나 메아리는 없었다. 말은 그럴싸하나 진정성 있는 실행방안이 뒤따르지 않는 탓일 것이다.

올해 유엔총회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근래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고, 북한에서는 리수용 외무상이 북한 외무상으로는 15년 만에 처음 참석했다. 당연히 남북간, 북-미간 대화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러나 기조연설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23일부터 긴장의 파고가 높았다. 뉴욕 최고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에서 열린 북한 인권 고위급 회의의 참석 대상을 놓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 회의는 개최 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유엔총회 기간에 열리는 행사라 당연히 북한도 참석이 가능한 줄로 알았다. 그러나 이 행사는 유엔 주관이 아니었다. 미국이 주최하는 것이라서 미국이 초청하는 대상만 참가할 수 있었다. 초청자의 면면은 하루 전인 22일까지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는 참석자를 묻는 질문에 외국 지도자들과 유엔 관리, 시민단체들의 다자 행사라고만 답했다. 한국 쪽 관계자들도 미국한테서 들은 바가 없다면서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북한이 이 회의 참석을 요청한 사실은 22일 오후에야 알려졌다. 북한의 자성남 유엔대사가 기자들에게 이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국무부에 다시 물었다. 북한이 유엔 인권조사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초청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행사 시간이 30분밖에 되지 않는 점, 북한에 국제사회의 압박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마련된 행사라는 점 등을 고려해 북한을 애초 초청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이례적으로 북한 인권을 회의장에서 논의하겠다고 한 만큼 행사 방식을 좀 조정해서라도 요청에 응했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바마 행정부 내 분위기에 밝은 한 인사는 내게 이렇게 귀띔했다. 미국은 지금 북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핵 문제와 관련해선, 비핵화 선행조처라는 높은 장벽을 쳐놓고 북한이 두손 들고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의 경직된 태도와 함께, 핵 협상이 열리지 못하는 주요 이유다. 미국의 강경한 태도는 이제 인권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북한의 인권 신장을 위해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존 케리 국무장관이 이 행사에서 말한 것처럼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고 나서면 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는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최근 펴낸 책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짚은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 지도자를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미국 외교정책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악마화를 하면 할수록 제 꾀에 자기가 빠지는 우를 범하게 된다.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규정하면 남은 것은 대결뿐이고, 정작 대화로 문제를 풀려 해도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번 소동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을 따라가기만 했다. 덩달아 남북간 분위기도 더 냉랭해졌다. 미국의 잘못된 행동에는 과감하게 수정을 요구하는 줏대 있는 외교만이 한반도 평화를 앞당길 수 있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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