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국제부장
홍콩의 거리에서 역사가 되살아나고 있다.
경찰의 최루액과 곤봉을 우산으로 막아선 젊은이들의 물결, 각자의 휴대전화 불빛으로 함께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연대, 희망을 담은 노란 리본의 물결, 도시 곳곳에 나부끼는 민주의 대자보에 담긴 희망들… 홍콩 시위의 중심지 공민광장이 1989년 베이징 천안문광장의 민주와 정의의 열망을 되살려내고 있다.
1997년 중국으로 ‘돌아온’ 옛 영국 식민지 홍콩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상징이었다. 1840년 아편전쟁의 패배로 제국주의 열강에 빼앗긴 첫 식민지 홍콩을 되찾은 것은 중국 공산당 정통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 홍콩이 이제 중국 지도부가 철권통치 속에 강조하는 ‘중국의 꿈’을 흔들며, 침묵을 강요당해온 ‘중국 민주의 꿈’을 되살려내고 있다. 중국은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첫 직선제 선거의 입후보 자격을 친중국 인사로 제한했다. 홍콩인들은 중국 당국이 ‘일국양제’에서 보장된 ‘홍콩인들에 의한 고도의 자치’ 약속을 깼다고 문제제기 하면서 진정한 민주를 요구하고 있다.
25년 전 중국의 천안문시위는 홍콩을 깨웠다. 1989년 봄 베이징의 시위가 한창일 때 700만 홍콩 시민 가운데 100만이 넘는 이들이 일요일마다 빅토리아공원에 모여 중국 대륙의 민주화 움직임을 지원하는 집회를 열었다. 희망에 차 있던 홍콩인들에게, 1989년 6월4일 새벽 탱크를 몰고 나온 인민해방군이 시위를 유혈진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 복귀를 앞두고 있던 홍콩인들의 마음은 충격과 공포, 불안으로 얼어붙었다. 천안문시위 유혈진압은 중국의 정치개혁과 민주화 여정을 막아버렸고, 중국 당국은 여전히 그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결과, 세계 양대 강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은 쇠퇴하는 미국을 대신해 국제질서의 한 축을 담당할 주역으로 꼽히고 있지만, 전세계의 많은 이들은 아직 중국이 세계에 제시할 보편적 가치, 중국적 국제질서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
이젠 홍콩이 중국을 깨울 수 있을까? 1989년 공산당 내 보수세력은 천안문광장에 모인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를 ‘불법적 동란’으로 규정해 대화의 문을 닫았다. 이번에도 중국과 홍콩 당국은 시민들의 요구를 ‘불법 시위’로 비난한 뒤 최루탄을 동원한 강경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경찰이 어린 학생들에게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르는 모습은 시민들의 분노를 키우며 더 많은 시위대를 거리로 불러들였다. 중국이 국내 반체제 세력을 다루는 데 활용해온 검열, 체포, 병력 동원, 돈으로 민주적 요구 억누르기 같은 방식은 홍콩에선(또는 중국 밖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중국 지도부에 주었다. 시위에 참가한 청춘들의 유토피아 같은 열정이 하루아침에 중국의 정책 변화나 민주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겠지만, 우공이산의 중요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꿈’을 내걸고 강경행보를 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번 시위에 중국이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홍콩과 중국을 넘어 아시아의 새로운 국제질서, 한국의 미래에도 중요한 의미가 될 것이다. 중국 당국이 강경진압을 선택하거나 대화 거부를 고수한다면 세계인들은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호를 감지할 것이다. 시위대와의 대화와 타협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낸다면 기대는 커질 것이다. 중국은 새 국제질서의 한 축을 담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 중국의 민주적 변화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세계가 홍콩을 주시하는 이유다. 홍콩인들의 외침은 우리의 외침이기도 하다.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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