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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언제까지 감세 타령만 하고 있을 건가

등록 2014-10-08 20:58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부자 감세, 서민 증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금까지 부자 감세는 없었다며 부자들이 일반 국민보다 더 많은 소득세를 내고 있다는 엉뚱한 얘기를 해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야당은 부자 감세 철회 없는 서민 증세는 안 된다며 실질적인 부자 증세를 요구하고 있다.

세금을 둘러싼 논쟁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서로 다른 논리를 내세우며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세금이 갖는 이중성 때문이다. 세금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국가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 확보다. 세율을 낮춤으로써 경제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다. 세금은 이와 함께 소득재분배와 계층 간 형평성 제고 기능도 있다. 대기업과 고액 자산가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둬 저소득층 복지에 사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세금의 어느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법인세율 0%를 꿈꾸었던 대표적인 감세론자(정확하게 말하면 저세율론자)이다. 1994년 3월 취임한 강만수 재무부 세제실장은 개방화 시대에 대비한 조세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강 실장은 국제통화기금을 방문해 조세 정책 방향에 대한 자문을 하면서 ‘저세율이 이긴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된다. 가능하면 빨리 법인세를 0%까지, 소득세는 최대한 25% 전후로 내리면 국제 경쟁에서 이기고 결과적으로 소득과 고용과 세입이 동시에 올라간다는 논리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복귀한 그는 대대적인 감세 정책(본인은 감세 정책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을 펴온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당시 25%였던 법인세율을 22%까지 낮췄고, 이런 감세 정책의 기조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감세론자들의 주장도 논리 자체로는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폐쇄경제가 아닌 개방경제 체제에서는 국내 기업의 법인세율이 높으면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감세론자들은 법인세율을 낮추면 기업들의 경쟁력이 높아져 투자도 늘어나고, 따라서 고용과 세수도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저세율로 단기적인 기업 수익은 많아졌는지 모르지만 국내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현실에서 입증됐다. 대기업들은 수조원의 여윳돈을 쌓아두고도 국내 투자는 소극적이다. 그사이 우리 경제는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더욱이 감세 정책의 결과로 세수가 급감함으로써 국가 재정 적자 규모는 점점 커져 간다. 내년 국가 채무는 올해보다 43조원이 늘어난 57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렇게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각종 복지 예산이 싹둑 잘려나간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중앙정부가 지원금을 줄이면서 시도 교육청들이 내년도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감세 정책의 부작용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감세로 인한 경제적인 효과, 즉 세수 확대와 경제 효율성 제고 등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면 감세 정책을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감세 기조를 고집하는 것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결국은 자신의 지지세력인 대기업과 부유층의 이익을 끝까지 보장해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 감세 정책(저세율 정책)의 효용성이 다하고, 오히려 부작용만 더 커지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경제를 살린다며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을 쏟아붓고, 기업 규제를 완화해 봤자 나랏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비 지출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200조원이 넘는 나랏빚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50조원 가까이 나랏빚을 늘려놓고도 모자라 또다시 나라 곳간을 거덜내려 하는 것이다. 그 근저에는 강만수 장관으로부터 본격화된 감세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철회하지 않고서는 경제 회생을 기약하기 어렵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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