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소설가
지하철역에서 ‘불신지옥 예수천국’을 외치며 피켓을 든 남자가 지나갔다. 삶이 오죽 답답하면 저럴까 싶은, 그 뒷모습이 왠지 서글펐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없을 만큼 유별나게 자기 종교에 대한 맹신이 넘쳐난다. 안전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를 살아야 하는 개인들의 고투가 여차하면 종교에 광적으로 기대는 기형의 영혼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한발 잘못 디디면 세상 누구도 자신을 구해주지 않는 허방이라는 것을 아는 불안감,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두려움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신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득 달라이라마를 떠올린다. “종교는 과거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양화된 시대에는 종교가 인간의 고민과 문제들에 대답을 줄 수 없다. 이제 종교를 초월한 삶의 방식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 자기 종교의 시각에 갇혀 세상을 재단하지 말 것을 권하는 그는 종교를 넘어선 보편적 도덕과 현실인식, 개인의 내적 각성을 당부한다. 가난, 기아, 전쟁, 환경문제 등 누적된 지구적 고통을 종교로는 해결하지 못함을 고백하는 종교지도자의 글썽이는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하다. 아이 같은 웃음을 띠며 그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인정하지 못할 게 뭐 있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번지는 안도감, 티베트를 억압하는 중국을 미워하지 말라며 “그들이 화살을 쏘면 그 화살을 꽃으로 바꾸어 되돌려주세요”라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몹시 그리워진 지하철역이었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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