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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우의 빨강] 가을나무 붓다

등록 2014-10-29 18:36

김선우 시인·소설가
김선우 시인·소설가

단풍이 절정이다. 계수나무, 은행나무, 보리수, 화살나무, 단풍나무, 복자기나무…. 찬란한 황금빛과 불타는 핏빛 단풍 물결치는 가을나무 밑에 앉는다. 나에게 모든 가을나무는 싯다르타의 보리수다. 구도자는 왜 나무 아래 앉는가. 나무는 땅과 하늘,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길이 가을나무 아래서 환해진다. 보리수 아래 싯다르타를 상상한다. 진리를 깨칠 때까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결가부좌를 튼 싯다르타. 그에게 마왕인 마라가 자신의 딸들을 보내 유혹하나 실패한다. 이어서 마왕은 군대를 보낸다. 마라의 군대가 싯다르타를 향해 화살·돌·창·칼 등을 쏟아붓지만 싯다르타 가까이 이르면 이것들은 꽃비로 변해버린다. 무기를 꽃으로 만들어 마라에게 되돌려보내는 싯다르타. 이 장면은 내 피를 자극하는 가장 아름다운 판타지 중 하나다. 왜 아름다운가. 흔히 오해하듯 싯다르타는 깊고 고요한 선정을 통해 불현듯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격렬하게 싸운 자다. 싸움을 정면으로 통과한 후 모든 존재가 당면하게 되는 고통의 뿌리를 깨닫고, 이 고통을 끝내는 자유의 법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과 중생을 위해 붓다가 된 그가 내게 위로를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지난한 쟁투 끝에 해탈에 이른 붓다, 붓다들. 바람이 분다. 삶과 죽음의 쟁투를 격렬히 수행 중인 가을나무 아래로 잎새들 쏟아진다. 단풍은 그냥 단풍이 아니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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