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박근혜 정부가 경제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박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다가 규제는 풀어줄 테니 투자를 많이 하라고 독려하였다. 기업들이 꿈쩍도 않자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소득주도형 성장 정책’을 내놓았다. 민간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촉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방향은 대체로 옳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배당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전월세 사업을 장려한다고 소비가 많이 늘지는 않을 것이다. 배당은 대부분 외국인 또는 기관투자가에게 갈 것이고, 혹시 주식부자한테 간다 한들 그들이 소비를 대폭 늘릴 리 없다. 전월세 소득이 늘어나도 소비가 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부자들은 소비할 만큼 소비를 이미 많이 해서 소득이 는다고 덩달아 소비가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면서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 최저임금을 꾸준히 높이는 것이 올바른 처방이나 기업이 잘 따를지 알 수 없고, 비록 따른다 해도 가계부채가 많고 사회 분위기가 위축되어 임금이 오른다고 소비가 따라서 늘어날지는 의문이다.
결국 경제 살리기는 투자 증가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규제는 주요 걸림돌이 아니다. 대기업은 돈이 수백조원이나 되지만 투자 대상이 마땅치 않고, 중소기업은 투자 대상은 상당하나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한다. 따라서 대기업은 투자 대상, 좀더 구체적으로는 첨단·핵심기술이 필요하고 중소기업은 돈이 필요하다.
첨단·핵심기술은 연구를 통해 나온다. 한국의 연구개발비 지출은 세계적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의가 개발비이고 연구비는 보잘것없다. 한국 경제를 폄하하는 외국의 관찰자들은 한국의 R은 리서치(research·연구)가 아니라 리파인먼트(refinement·개선, 개량)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한다. 첨단·핵심기술 확보를 위해서는 연구개발비 지출을 개발(D) 중심에서 연구(R)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당장 투자 확대를 원하면 돈이 중소기업에 흘러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 중소기업과 공유케 해야 한다. 이것은 시혜적인 것이 아니다. 보상적인 것이다. 초과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은 납품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거래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여 대기업이 더 이상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1970년대 말에 제정했다가 2006년에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되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셋째, 정부가 물자를 조달할 때 일정부분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해야 한다.
이 세 가지 방법 가운데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 발주는 벌써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끝을 모르는 탐욕으로 대기업들은 1차 중소기업 적합업종 82개 가운데 52개를 풀어달라고 나섰다. 적합업종을 3년마다 재논의하자는 약속도 업종에 따라 1~3년으로 차별화하자고 떼를 써서 관철시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3년 전부터 같은 테이블에 앉아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논의해 왔다. 정부가 개입하기보다는 산업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현재의 적합업종 선정은 대기업이 논의를 아예 거부하거나 합의에 소극적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또한 합의한 뒤에 지키지 않더라도 강제할 방법이 없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합업종 제도를 법제화할 것을 제안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이 법제화되어 적합업종이 확대되면 단기적으로는 중소기업의 투자 확대로 경기침체가 완화되고 장기적으로는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으로 지속적 성장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양극화도 완화될 것이 틀림없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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