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빈 논설위원
정치권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들에서 늘 희한하게 보이는 게 하나 있다. 대체로 경제 성장에는 보수정부가 진보적인 정부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진보는 분배, 보수는 성장을 중시한다’거나 ‘경제는 기업친화적인 보수정부가 더 잘 운영한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하지만 지난 7년여 동안 한국 경제의 현실은 이런 통념과 거리가 멀다. 보수정부의 무능과 부실만 점차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국가경제 운용 능력을 재는 일반적인 잣대는 잠재성장률이다. 이는 물가상승 압박 없이 나라의 자원을 최대한 동원해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국내외 여러 연구기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까지 10년 동안 4%대 중후반을 유지하던 잠재성장률이 이명박 정부 출범 뒤 5년 동안 3%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박근혜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17년께는 2%대로 떨어질 가능성까지 점친다. 어쨌든 보수정부 집권 10년 만에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1%포인트가량 낮아지는 셈이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을 일반 국민이 실감하긴 어렵다. 그러나 실제 국민의 일상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잠재성장률 1%포인트 하락은 고용유발계수로 따지면 약 7만명에게 줄 수 있는 번듯한 일자리의 상실을 뜻한다. 또 국내 전체 가구가 평균적으로 연간 80만원가량씩 소득이 늘 수 있는 기회를 잃는 것이다.
나라살림, 즉 재정 여건에서도 보수정부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는 등 대기업과 부자들을 위한 감세 조처를 단행했다. 이렇게 하면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도 증가해 우리 경제가 연간 7%까지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에 진입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결국 허언이 됐다. 성장 둔화와 이에 따른 세수 부족으로 재정적자가 만성화하고 국가(정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가 직접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4대강 사업, 국외 자원개발 등에 수십조원의 나랏돈을 쏟아붓더니 대형 부실과 비리 의혹만 낳고 있다. 한마디로 나라살림을 말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에도 국가재정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경기가 완만한 추세로 회복 국면에 진입한 가운데서도 기록적인 세수결손과 재정적자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부채 증가 속도(2013년 10.5%)가 경제성장률(3%)이나 명목 국민소득 증가율(3.6%)을 훨씬 웃돌고 있다. 이대로 가면 재정파탄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엉뚱하게도 정부와 새누리당은 재정 기반이 허약해진 원인을 복지지출의 과잉 탓으로 돌린다. 그래서 초중등 교육기관의 아이들 밥 먹이는 데 쓰이는 예산을 깎자고 주장한다. 심지어 ‘무상복지의 중단’을 선언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현실을 호도하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정부의 총지출에서 복지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반면에 정부의 경제사업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등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사업지출 비중을 줄여 복지 결핍을 해소하는 게 재정개혁의 과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로 국민 행복 시대를 연다”는 공약을 내걸어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제 성적표로 평가하면, 반성과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만성 허언증 환자처럼 보인다. 정책 기조를 확 바꾸지 않으면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이란성 쌍둥이’로 전락할 게 뻔하다. 나라경제를 말아먹거나 털어먹거나 도긴 개긴이지만 멍드는 건 불쌍한 국민이다.
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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