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가 헛돌고 있다. 개혁의 내용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원론 수준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가의 재정 형편상 개혁은 불가피하다”고 한쪽에서 주장하면, “하지만 졸속은 안 된다.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상대가 맞받아친다.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과 “공무원연금의 (국민연금 수준으로의) 하향평준화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선다.
이런 논쟁 구도에서 보듯, 국가의 재정압박과 국민연금과의 격차를 줄여야 할 당위성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두 연금의 수령액 격차는 한 해 수조원씩 적자보전금으로 쏟아부어야 할 만큼이나 심각하다. 최근 공무원연금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지난해 공무원연금 수급자가 받은 연금이 월평균 229만원(기능직 평균은 159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온다. 이는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 32만원의 7배다. 한국납세자연맹이 입수한 공무원총연맹 교육자료 동영상을 보면, 매달 300만원 이상 받는 은퇴 공무원이 21.1%(지난해 10월 기준), 연금액이 월 100만원 미만인 경우는 6%다.
연금 적자보전액 추산은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다. 두 연금의 격차도 여러 조건들을 배제하고, 수령액만을 단순 비교했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개혁의 당위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다. 문제는 졸속을 피하고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며 하향평준화는 안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 얼마나 현실성을 갖는가 하는 데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역대 정권이 추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만, 시대적 과제다. 졸속이 아니라, 진행이 너무 지지부진하다는 것이 문제다. 역대 정권이 개혁을 해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합의’라는 벽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개혁을 추진하다가 ‘사회적 합의’에 막혀 실패한 당사자다. 그는 당시 “공무원노조와 교섭을 한 뒤 공무원연금 개정안을 만든다면 50년 걸려도 안 된다”고 했다.
하향평준화는 안 된다는 주장은 매우 엉뚱한 말이다. 지금 논의되는 개혁안은 평균 229만원의 수령액을 깎아서, 32만원에 근접하게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더 이상 줄여서는 안 될, 월 100만원 이하 수급자가 6%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기능직 중심의, 연금을 적게 받는 계층은 깎지 않고, 그 윗선만 깎아도 재정압박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의 방향은 분명하다. 연금 적자 보전액의 삭감 목표를 세우고, 이를 공무원 직능, 계층별로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정하면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은 당연히 하후상박, 곧 아래쪽은 깎지 말고, 상위 계층을 많이 깎는 것이다. 일단 정부안을 수정한 새누리당의 개혁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니, 이제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안을 갖고 새누리당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일 단계다. 그럼에도 야당은 물론, 여당도 논의에 미온적이긴 마찬가지다.
개혁 논의가 원론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개혁이 되지 않았을 때의 부담은 차기 또는 차차기 정권의 몫이지만, 개혁 과정에서 잃는 공무원 쪽 표는 머지않아 치러야 하는 총선과 대선에서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개혁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이 개혁으로 자신의 몫이 줄어드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권 인사들이 입버릇처럼 외우는 “애국 애족”을 이제 공허한 구호가 아니라, 실제 상황에 적용해,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절실한 때다.
성한표 언론인·전 <한겨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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