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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통일 시대를 준비하자

등록 2005-09-25 18:41수정 2005-09-25 18:41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양쪽은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시설을 경수로 원자로 발전소로 대체하기 위해 협력한다. 정치적, 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를 추구한다. 핵이 없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 국제적 핵비확산체제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

지난 19일 6자 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인가? 아니다. 11년 전에 나온 제네바합의 4개 항의 제목이다. 제네바합의와 공동성명은 기본 구조가 닮았다. 크게 보면 둘 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지원을 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 뼈대다. 지난 몇년간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와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무력화하기 위해 애써온 것을 생각하면 큰 역설이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출발점에 선 셈이다.

물론 공동성명과 제네바합의는 다른 점이 많다. 주체가 ‘양쪽’에서 ‘6자’로 바뀌었고, 합의의 수준도 공동성명 쪽이 훨씬 폭넓고 근본적이다.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하고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는 내용도 공동성명에만 있다. 이는 동북아에서도 냉전 종식 이후의 과도기적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 모색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음을 뜻한다. 그 한복판에 6자 회담이 있다.

공동성명이 그대로 이행된다면, 한국은 곧 세 가지 축의 회담 틀을 갖게 된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회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각종 남북회담이 그것이다. 북한은 여기에다 미국,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기 위한 회담까지 해야 한다. 아울러 한반도 평화체제 회담은 동북아 전체의 안보협력 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다른 회담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쯤이면 유럽연합과 비슷한 동북아공동체를 만들자는 움직임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냉전질서를 만든 2차대전 이후 10년에 맞먹는 질서재편기가 바야흐로 닻을 올린 것이다. 최소한 앞으로 50년은 지속될 질서다.

질서재편이란 측면에서 볼 때, 공동성명과 제네바합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 여부다. 제네바합의 때는 회담 진행상황조차도 미국에 귀동냥을 해야 하는 처지였으나 이제는 6자 회담의 진전을 담보할 수 있는 동력과 외교력을 확보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우리 스스로 노력한 결과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를 둘러싼 국제질서를 만들어가는 무대의 중심에 진입한 것이다. 19세기 중반 열강들과 본격적으로 맞닥뜨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새로운 질서는 통일된 한반도를 전제로 한다. 앞으로 있을 모든 회담의 귀결이 바로 새로운 질서이자 통일이 돼야 한다. 바꿔 말하면, 통일 시대에 대한 비전이 없이는 우리는 새 질서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이 과정은 한번 가속도가 붙으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10년 안에 통일을 볼 수도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미리 준비하는 것은 한민족 모두의 몫이다.

이번 공동성명은 ‘약속 대 약속’일 뿐이다. 앞으로 있을 `행동 대 행동’ 단계에서는 숱한 난관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만 분명히 한다면 극복하지 못할 일이 없다. 어떤 경우에도 주도적 역할을 포기하기 않겠다는 철저한 자각과 통일 시대를 내다보는 일관된 지향이 그것이다. 새 역사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로 향하는 의지가 현재의 힘과 합쳐져 만들어지는 법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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