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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주식

등록 2014-12-01 18:52

오늘날 직업이 뭔지 알기 어려운 중장년 남성을 부를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2인칭 대명사는 ‘사장님’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직업을 물었을 때에 돌아오는 가장 흔한 대답도 ‘회사원’이다. 어떤 은행의 광고 문안대로, 현대의 ‘천하지대본’은 기업이며, 기업 세계의 중심에 상장 주식회사들이 있다.

한국인들이 회사라는 이름의 영리 조직을 처음 만든 것은 1883년이다. 이해에 의주 상인들이 의신회사를, 서울 상인들이 장통회사를 설립했다. 당시에는 회사의 지분을 깃이라 했는데, 깃을 가진 사람이 사원이었고 고용인은 고원이나 용인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주식회사라는 이름을 사용한 회사는 1898년에 설립된 부선주식회사였다. 이후 주식회사는 계속 늘어나 1907년에는 서울에서 사설 유가증권 및 주식 매매소가 문을 열었다. 주가 등락에 따라 웃고 우는 사람들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일제 강점기 주식 투자는 금맥 찾기, 쌀·콩의 선물 거래와 함께 팔자를 바꿀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1932년 경성주식현물취인시장과 인천미두취인소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조선취인소는 수많은 사람들을 패가망신시키는 한편에서 ‘투자의 달인’과 ‘주식 졸부’도 탄생시켰다. 해방 이후 경제 사정에 따라 주식시장도 커졌다 작아졌다 했지만, 현재는 사실상 모든 국민이 주식과 직간접적 관련을 맺고 있다.

주식 한 장은 그 소유자의 성별, 연령, 국적, 학력, 장애 여부, 성적 취향에 관계없이 완벽하게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전적으로 평등한 ‘액면가’의 주식들로 구성된 주식회사는 ‘주권은 돈에 있으며 모든 권력은 돈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전’의 원칙과 다수결의 원리에 철저한 모범적인 전주공화국이다. 게다가 주식은 100만원어치밖에 못 가진 ‘개미 투자자’와 1조원어치를 가진 ‘재벌’을 같은 이해관계로 묶어주는 마력을 발휘한다. 주로 숫자로만 떠다니는 이 물건은, 옛날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진 현대사회를 통합하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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