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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외로운 파수견을 위한 변명 / 김동률

등록 2014-12-10 18:56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언론학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언론학
도발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변호사가 변론을 오도하거나 의사가 처방전을 잘못 끊으면, 자격을 잃거나 심한 경우 구속되기도 한다. 분식회계 공인회계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기자가 권력기관의 서류를 슬쩍해 거대 사회악을 폭로하게 되면 퓰리처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사회로부터 존경받게 된다. 왜 그럴까?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사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미디어의 세계다. 그러나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촛불을 훔치는 것이 용인되기 어려운 것처럼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불편하다.

이처럼 동기의 순수성과 절차의 정당성 사이의 충돌은 언론 현장에서 늘 나타난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평생 동안 좋아한 사람은 칸트다. 그는 어둠 속에 빛나는 별과 인간의 양심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것이라며 늘 감탄했다. 행위 자체의 도덕성에 무게중심을 둔 칸트에 따르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데 일정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비양심적인 취재 행태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칸트의 주장을 수긍하기 힘들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워낙 복잡하게 맞물려 있어 취재 과정에서 절대적 합법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결과가 수단을 일정 부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제러미 벤담, 존 스튜어트 밀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실제로 부도덕한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경우가 언론 현장에서는 종종 발생한다. 거대악을 폭로하기 위해 서류를 빼내거나 몰래카메라를 사용할 때 과연 그러한 행위를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에스비에스>(SBS)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보도 내용을 두고 검찰이 수사 방침을 밝히면서 시작된 언론과 공권력 사이의 긴장 국면은 이제 청와대 문건 유출 파동으로 이어지면서 언론사와 당국의 정면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는 청와대의 대응과 검찰의 수사 방침을 걱정스레 지켜보고 있다. 이번 논쟁의 뿌리는 저널리즘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에 있다. 저널리즘의 특징은 무엇인가를 쑤셔내어 알리는 데 있다. 이에 반해 권력기관들은 대개 뭘 감추려 한다. 충돌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부채질하는 것은 인간의 이중적인 판단기준이다. 공권력이 감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칠게 반발하면서도 훔친 문건을 통해 폭로한 권력기관들의 부정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작업장에 설치된 폐회로티브이에 대해서는 노여워하지만 유치원 몰래카메라는 필요악이라며 당연시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에스비에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세계일보> 취재진에 대한 검찰의 태도는 득보다 실이 많다. 언론은 보통의 사안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지닌다.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엄격한 기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역사를 통해 체득한 경험에서 오는 진리는 취재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껴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면서 부패 가능성은 더 늘어났고 범죄 또한 큰 폭으로 뛰고 있다. 용기있는 언론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근거가 된다. 에스비에스의 탐사보도 등 최근의 언론보도들이 사법당국에 의해 위협을 받는 것은 곤란하다.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다양한 과정을 통해 자율적으로 걸러져야지, 검찰이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곤란하다.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자유다. 뉴욕의 심장 타임스스퀘어는 <뉴욕 타임스>가 있던 자리다. 이 신문이 보여준 불굴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미국인들이 이름을 붙였다. 파수견이 위협받는 사회는 불행하고 위험하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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