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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진보당 헌재 결정 전에 정부가 결단해야 / 남경국

등록 2014-12-15 18:43

남경국 독일 쾰른대 법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남경국 독일 쾰른대 법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지금 법무부와 일부 언론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연방헌재)의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을 제시하며 우리 헌법재판소도 통합진보당에 대해 신속히 해산을 결정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1956년 독일 연방헌재는 독일공산당(KPD)에 대해 ‘당원 일부’가 아니라 ‘당 자체’가 강령에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목표로 하고 있고, 이를 연설과 선전물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해산을 결정했다.

법무부 등은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 과정의 심사 방식을 거론하며 이번 사건에서도 엄격심사를 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58년 전 독일 연방헌재는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에서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거부한다고 하여 바로 그 정당이 헌법에 위반한다고 볼 수 없다. 위헌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거부’에 더하여 그 정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적극적 투쟁과 공격적 행위’ 등이 있어야 한다”며 정당해산심판의 엄격한 심사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독일 연방헌재는 또 “정당에는 속하지 않으나 그 정당의 영향력 아래 있는 조직, 즉 이른바 ‘은폐조직들’(Tarnorganisationen)의 헌법 질서에 반하는 목적과 행위를 이유로 정당 자체를 해산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경우 문제의 은폐조직이 강제해산되고, 형사법상의 제재 여부가 문제될 뿐이다. 정당의 일부 조직이 헌법 질서에 반하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정당 자체를 해산하지 않는 것은 정당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이 정당에 부여하는 ‘정당특권’(Parteienprivileg) 때문이다.

정부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의 발단은 2013년 이석기 의원과 일부 당원들이 모여서 한 발언들과 그 모임의 실체 여부 등을 둘러싼 검찰의 기소였다. 그러나 2014년 해당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비밀조직(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해당 모임에서 나온 발언들은 국민의 상식과 법감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국민의 분노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 연방헌재의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을 보더라도, 이번 사건의 경우 정당해산 결정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우선 진보당 강령이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 진보당 전체가 공개적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 또는 제거했다고 볼 수도 없다. 무엇보다 이 당이 국민을 상대로 구체적으로 헌법에 반하는 행동에 나선 바도 지금까지는 없다. 그렇다면 위헌정당해산의 헌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설령 검찰과 법무부의 주장처럼 혁명조직(RO)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 비밀조직 자체가 진보당 자체, 즉 ‘진보당=혁명조직’과 같이 동일시될 수 없다. 또 그 조직이 진보당의 영향 아래 있는 조직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특권’으로 인하여 진보당을 해산할 수는 없다. 앞으로 대법원이 혁명조직의 실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헌법적으로는 단지 그 비밀조직이 강제해산될 뿐이다.

독일에서도 연방헌재에 의한 신나치당(NPD)의 위헌정당해산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2013년 독일 연방정부와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신나치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에 대해서 “꼭 필요한 조처로 보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도 진보당의 존폐 여부는 유권자 판단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이제라도 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 전에 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취하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남경국 독일 쾰른대 법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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