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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그 멋진 공원의 주인은? / 음성원

등록 2014-12-16 18:47수정 2014-12-17 11:49

음성원 사회2부 기자
음성원 사회2부 기자
‘호수공원’ 기부해놓고 ‘주인 행세’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입주민들
서울 반포의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는 반포 지역을 강남의 새 부촌으로 자리잡게 만든 유명한 아파트 단지다. 강남 학군에 유명 학원가가 밀집해 있고, 백화점 등 생활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단지 바로 옆 반포천을 따라 10여분만 걸으면 한강변까지 갈 수 있고, 반포유수지 종합운동장이 단지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활동도 가능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지 한쪽에는 면적이 1만1803㎡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공원도 있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 호숫가를 거닐며 한적한 일상을 만끽한다. 이쯤 되면 ‘여기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그런 욕심은 버려야 한다. 포털사이트를 보면 공급면적 86㎡(26평)짜리 작은 집을 팔려고 부르는 값이 9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전세로 들어가려 해도 최소 7억5000만원 정도는 필요하다.

래미안퍼스티지
래미안퍼스티지
그런데 재미난 사실이 하나 있다. 이 호수공원은 아파트 소유물이 아니다. 이 아파트가 지어질 때 용적률(대지 면적 대비 건물 연면적 비율)을 높이면서 그 대가로 공공에 기부한 기부채납지다. 시민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공 공원이란 뜻이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공원이 아파트 단지와 반포천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찾아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서초구 관계자는 “어차피 아파트 단지 사람들만 이용하기 때문에 따로 구획도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기부채납된 공공시설 중 도로와 공원의 비중이 90%를 넘는다. 이들 도로와 공원은 대부분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래미안퍼스티지처럼 주변에 주민을 위한 개방공간이 이미 충분한데도 또 공원이 들어서는 경우도 많다. 현행 기부채납 제도가 개선돼야 하는 이유다.

기부채납 제도가 바뀌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최근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의 ‘서울시 뉴타운·재개발 해제지역의 실태조사 분석 연구’ 결과를 보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가 속한 동남권에서만 뉴타운 추진구역(15곳)이 해제구역(4곳)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강북 지역이 속한 동북권에서 추진구역이 6곳에 불과하고 해제구역은 22곳으로 조사된 것과 대조적이다. 다시 말해 부동산 경기 침체 이후 아파트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되는 곳은 대부분 강남 지역이란 얘기다.

아파트 재개발·재건축이 불가능해진 서울의 여러 지역은 공원 등과 같은 개방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2010년 국토해양부의 주거실태조사에서도 단독주택지 거주자가 아파트 단지 거주자에 비해 생활편의시설과 문화여가시설, 주차, 보행환경 등에 대한 불만족도가 높았다. 반대로 이미 살기 좋은 강남은 속속 아파트 개발이 진행되면서 공원과 도로 사정이 날로 더 좋아질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서울의 공간적 불평등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빨간 구획 안쪽이 래미안퍼스티지 호수공원(*클릭하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파트 재개발 과정에서 도로·공원을 공공에 기부채납하는 관행은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공공이 제공해야 할 기반시설을 민간 스스로 확충해왔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구실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서울의 모든 지역을 아파트 단지로 바꿀 수 없다면, 아울러 이미 부가 집중돼 있는 강남 지역에만 아파트 개발에 따른 혜택을 줄 게 아니라면 이제 제도를 바꿔야 한다.

다세대·다가구주택에서 살면서도 멋진 공원에 쉽게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도로나 공원을 기부채납하는 게 아니라 직접 돈을 내는 방식을 추진하든, 아니면 서울 시민 전체가 쉽게 이용할 만한 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든 기부채납의 다양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좀 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원래 제도의 취지에 걸맞은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음성원 사회2부 기자 e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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